취송(翠松) 2022. 3. 12. 09:17

/ 정병율

 

가끔씩 나는 샘물에 풍덩 빠지고 싶은 욕구를 느낄 때가 있다. 그렇다고 내가 어떤 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살면서 괜히 우울해지거나, 가슴이 막막해질 때 혹은, 화가 머리 꼭두까지 치솟았을 때 그런 마음이 한 번씩 들곤했던 것이다.

 

설핏 그런 생각이 든다. 샘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들어가면 우선 내 마음이 안정될 것이라는 것!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기에 철저한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도 있다. 그러기에 무한한 상상과 새로운 꿈을 펼칠 수도 있으리라. 특히 여름철에는 그 샘물에 첨벙 몸을 담그면 얼마나 시원할까 싶기도 하다.

 

그처럼 맑고 청아한 샘은 이 도시 주변에서는 발견하기 어렵다. 지금은 아주 깊은 산골에서나 볼 수 있는 그것은 어느새 우리에게 귀중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샘이 있는 곳에는 두레박도 옆에 존재하는 법이다. 그 두레박을 쳐다보고 있노라니 느닷없이 내 어머니 생각도 한 번씩 난다.

 

어머니는 내가 갓난아이 때부터 그 두레박으로 물을 길러 밥을 짓고, 빨래를 하시고, 가끔씩은 도토리묵도 만들어 내 간식거리로 먹이기도 하셨다.

 

솔솔 바람이 분다.

어쨌든 나는 내 마음속에 고여 있는 샘 한 가운데로 몸을 첨벙 빠뜨리는 상상을 한다. 청량하기 이를 데 없었다. 요즘같이 어렵고 팍팍한 생활에 그런 탈출구가 내게 없었다면 무슨 재미로 버텼겠는가?

 

하긴 누구한테나 자신만의 샘은 하나쯤 간직하고 살고들 있다. 그곳에서 물을 길어 하루하루 묵은 찌꺼기를 씻어내기도 한다. 이를테면 양심이라는 이름의 그것은 우리들의 죄악으로부터 끝까지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사람에게 그러한 과정조차 없다고 생각해보라. 세상의 온갖 추악한 오물에 뒤덮여서 종내에는 숨통이 다 막혀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마음속의 샘물만이 우리네 삶을 오래오래 청결하게 만들어 주리라.

 

그렇다면 나는 그것을 제대로 실행하고 있는가. 묻고 싶어진다. 매 시간마다 그렇지는 않더라도 살다가 내가 각성을 필요로 할 때는 기꺼이 그 샘에 몸을 내맡긴다. 그럴 때면 청소는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이윽고 내 정화된 영혼은 저 굴레 밖으로 뛰쳐나와 활개를 치기 시작한다. 그때는 내 눈앞에 보이던 세상의 어둠은 온데간데없고 어떤 평화로움만이 마음 주변에 아득해진다. 그 순간 나는 들뜬다. 어디서든 오고 가는 발걸음이 새털처럼 가볍기만 하였다.

 

아마 그런 기분에 오래 푹 사로잡혀 있었던 때문이었을까? 얼마 동안은 나는 그 샘 속에서 길을 찾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다시 슬슬 교만해진 나는, 그때부터 아무렇게나 행동해버린다. 어느새 내 눈은 욕심에 탁해져 있었고, 입도 오두방정을 떨기 바쁘고, 쓸데없이 목에 힘주면서까지 거리를 휘젓고 다닌다.

 

참 가관이었다. 언제 나는 변함없이 한자리에서만 머물며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샘의 겸손함을 배울까? 갈증 난 나는 나그네에게도 기꺼이 버들잎 서너 가닥 띄워서 시원한 물 한 바가지 선사하는 사람이 되려나? 아무래도 아직 나는 내 인생의 떳떳한 주인공으로서 모범을 보이기까지는 까마득한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결코 실망하지 않는다. 그때마다 달려들어 내 타락한 정신을 깨끗하게 씻을 수 있는 샘 하나가 언제까지나 마음속에 있으니까 말이다. 그것은 정말 내게 있어 구원이자 믿음직한 자산으로써도 손색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여태껏 나는 변명만 늘어놓을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어떤 경우든 내 찌든 마음을 정화시키는 게 순서일 텐데 어떻게 된 것이, 엉뚱하게 자꾸 딴말만 늘어놓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안다. 나 지산을 깎아내리는 습성도 실상은 그 반대로, 이기적이고도 강한 내 자존심을 내세우려는 꼼수에 불과하다는 걸. 하긴 나 자산부터가 조금은 위선적이기도 하다는 걸 깨닫고 있긴 하다. 그럴 때면 평생토록 청결한 심성을 지니고 있는 저 샘물에 비하면 정말 나는, 왜소하고 허물 많은 존재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마 그런 이유에서라도, 우리들이 저마다 투명하고 영롱한 샘하나쯤은 가슴 밑바닥에 촘촘히 품고 살아야 되겠지.

 

틈이 날 적마다, 고요하게 고여 있는 물의 참뜻을 상기해야 할 의무가 나에게도 있다. 어쨌거나 굳건하게 중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면 말이다. 그러다 보면 가끔씩은 마음의 평정을 찾을 날도 있으리라. 속만 태우시며 한 살이를 하셨던 내 어머니도 그러셨듯이.

 

옆집 앞마당, 샘이 얼마만큼 깊은지는 빠져봐야 안다.

 

그 상대방의 속도 겪어보지 않으면 도무지 알 리가 없다. 그렇게 나도 세상 천지에 아는 게 몇이나 될까? 어느 자리에서도 내가 겸손해야 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조차 지켜나간다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일이긴 하다.

 

그러고 보면 어머니, 당신 가슴에는 가만히만 계셔도 절로 맑은 샘물이 샘솟았겠지. 아마 그 물에서 다시 태어난 나는 내내 행복했으리라 믿는다. 적어도 나는 영원하고도 아낌없이 주는 사랑을 가슴에 간직하고 사셨던 어머니 당신의 자랑스러운 아들이었으니까. 언제까지나 내 어머니의 품 안에서 가는 숨 쌕쌕거리며 어떤 자비로움과, 온갖 영롱한 꿈을 키워오기도 했으니 그런 마음이 당연히 들 수밖에.

 

슬쩍, 내 꿈속의 샘에다 몸뚱이 전부를 맡겨본다. 얼마 가지 않아서 속까지 죄다 후련하게 씻긴다. 아까부터 하늘다리에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계시던 어머니가 환한 웃음을 짓고 계신다. 순간 반가워서 같이 올려다봤는데, 그동안에도 계속 어머니는 내 뺨을 부드러운 손으로 살살 어루만져 주셨다. 아무래도 오늘 나는 당신 때문에 또 한 번 실컷 울먹이게 될 것 같았지.

 

돌연, 그 물길이 장단에 맞추어 너울너울 춤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