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줄
동서가 등산하러 가자고 이끌었다. 겨울의 끝자락인데 눈 덮인 산을 한 번이라도 밟아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명분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냉랭한 우리 집 분위기를 반전시켜주려는 속 깊은 배려임을 어찌 모르랴.
나는 다니던 회사를 명예퇴직하고 다른 일을 시작했다. 직업은 내가 좋아서 하는 취미가 아니고 돈을 벌어야 하는 생존이 걸린 문제이다. 그런데 나는 여유 있는 자의 소일거리같이 마음 수련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돈이 안 되는 일을 즐기듯이 말이다. 나를 보고 한심한 사람이라고 한숨지을 아내를 생각하면서도, 내 능력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고 고집스레 붙들고 있었다. 가뭄에 무논 마르듯 가정이 서서히 메마르기 시작했다. 가정을 묶어주던 화목도 서서히 풀어져 가고 있었다. 아내는 인내에 한계를 느낀다는 듯 조금씩 거친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내에 대하여 어떤 배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내가 하는 어떤 일에도 간섭하거나 잔소리를 하지 않기로 했다. 간섭하지 않음으로써 마음이라도 편하게 해주자고 생각했다. 부엌에서 들리는 접시 깨지는 소리에 귀를 막고, 아내의 숨 가쁜 걸레질에는 눈을 감았다. 그런데 가정의 따스한 온기는 사라지고 냉랭한 분위기만 집안을 가득 채웠다. 집안에는 웃음기 없는 썰렁한 기운만이 화학물질이 타며 내뿜는 연기같이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황량한 겨울 산에서 홀로 누런 잎을 매달고 서걱거리는 떡갈나무가 거실 한가운데 버티고 있는 양 을씨년스러운 소리가 거칠었다. 서리 맞은 늦가을의 뜰 같은 집안 분위기는 동서에게도 느껴졌나 보다.
동서 부부, 처남들 부부와 함께 등산길에 나섰다. 산을 갈 때마다 산은 인생길 같다는 생각을 저버릴 수가 없다. 산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구절양장의 굽이진 길을 걸어야 하고, 숨 헐떡이며 올라가면 집채 같은 바위가 앞을 가로막아 이를 타고 넘어야 한다. 요리조리 살펴보면 지돌이, 안돌이로 건너야 하는 길도 나타난다. 잠시 한눈을 팔아 발을 헛디디면 떨어질 천 길 낭떠러지의 아슬아슬한 길을 지나기도 한다. 인간의 고뇌 같은 산길은 어쩌면 인간의 마음을 정화해주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고난의 역경을 즐기고자 일부러 산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개를 넘어 하산 길로 들어서니 응달이었다. 여기저기 희끗희끗한 잔설이 아직은 겨울임을 확인 시켜 주었다. 덜 녹은 눈이 얼어붙어 길은 미끄러웠다. 올라오는 길은 따스한 양지였는데 내려가는 길은 냉기 가득한 음지였다. 흘린 땀도 어느덧 식어버려 찬바람 부딪는 볼이 시렸다. 양지의 산을 오름과 음지의 산을 내려감이 이렇게 다른 느낌이라니, 겨울과 여름을 동시에 맞는 느낌이었다. 저 밑에선 하얀 햇살이 우리를 향해 빨리 오라는 손짓인 듯 팔랑이고 있었다. 나는 남들보다 조금 빠른 걸음으로 계곡을 내려왔다. 그런데 계곡을 다 내려와 햇볕 따스한 건너편으로 가자니 제법 넓은 개천이 가로막고 있었다. 빙판을 건너야 하는 예상치 못한 장애물이었다. 얼음이 꽁꽁 얼어붙어 건너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일행보다 앞서갔기에 시간적 여유가 있어 천천히 조심조심 건넜다. 개천 건너편에서 일행이 오기를 기다렸다. 곧 일행이 도착했고 미끈거리는 발을 조심하며 한 사람씩 개천을 건너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얼음이 아주 미끄럽지 않아 조심조심 걸어 하나 둘씩 개천 건너기에 성공했다. 아내도 건너려고 얼음판에 들어섰다.
개천에는 건널 때 의지하라고 묶어놓은 동아줄이 하나 있었다. 오랜 세월을 이어온 듯 줄은 축 늘어져 있어, 사람들은 이용하려 들지 않았다. 그런데 아내는 그 줄을 잡았다. 의지할 수 없는 줄에 몸을 의지한 아내는 바로 균형을 잃어 미끄러지며 넘어졌다. 줄은 아내에게 도움이 아니라 넘어지게 하는 촉매 역할을 했을 뿐이다. 나는 아내를 구하겠다는 생각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아내에게 도달하기도 전에 미끄러져 벌러덩 더 심하게 넘어지며 아래쪽으로 굴렀다.
붙잡고 건너기엔 너무 늘어져 소용이 없는 줄을 아내는 왜 굳이 붙잡았을까. 아내는 의지해야 할 마음의 동아줄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을까. 느슨한 줄에라도 의지하고 싶은 아내의 마음은 아니었을까. 아, 저 느슨한 밧줄이 바로 나로구나. 마당의 빨랫줄도 늘어지면 바지랑대를 세워줘야 하거늘 그동안 너무 무심했었다. 자동차에 안전띠가 있는 것처럼 가정에도 안전띠 같은 줄이 필요하다. 가정의 화평을 엮어주는 줄 말이다. 늘어진 동아줄은 가정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가정을 넘어뜨릴 수도 있다. 아내를 넘어지게 한 건 바로 나였고, 나 또한 함께 넘어지고 말았다.
그저 수입이 되는 대로 아내에게 전달하기만 하면 나의 임무는 끝나는 양 가정에 무관심했다. 아무 간섭하지 않음이 아내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집에 들어오면 각자의 방에서 각각의 생활을 해나갔다. 집안은 건조하다 못해 마른 섶이 쌓여있듯 불만 지르면 화들짝 타오를 것 같은 분위기였다. 밟으면 깨질 것 같은 살얼음판 위를 걷는 삶이었다.
이제 와서 없는 돈을 어찌하랴, 주어진 여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할 게 아니겠는가. 내가 중심을 잡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안전띠 같은 가정의 동아줄이 팽팽해질 게 아닌가 말이다. 돈으로 메울 수 없는 자리를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며 마음으로 채워가면서 살아가면 될 게 아닌가. 그동안의 내 살아온 방식을 후회하며 새 삶을 다짐해 보았다.
산에서 내려오는 마음이 가벼웠다. 집을 나설 때 답답했던 가슴의 응어리가 다 풀린 듯 시원했다. 아내가 쓰러지며 보여준 것은 의지할 동아줄이 필요하다는 묵언의 시위가 아니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