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꽃
바늘꽃 / 배정수(스틸에세이 1회 은상 수상작)
저녁부터 조물닥 조물닥 꽃을 피운다. 바늘귀에 주홍빛 실을 꿰어 장미 세 송이를 활짝 피우고, 옆에는 라벤더를 곁들인다. 개망초와 노란 씀바귀에는 빨강 열매를 수놓고, 줄기마다 짙고 옅은 초록 잎을 달아준다. 코스모스와 구절초를 무리지어 놓았더니 가을이 문을 열고 나온다. 바늘 지나간 자리가 곱다. 고마운 이에게 손수 만든 자수 브로치를 선물하고 싶었다.
봄을 닮은 그녀에겐 수수하고 잔잔한 팬지와 씀바귀를, 여름의 열정이 느껴지는 매사에 열심인 그녀에겐 화려한 장미와 라벤더를, 가을의 분위기를 간직한 차분하고 온화한 친구에겐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와 구절초를, 겨울의 냉철함으로 늘 많은 조언을 해 주시는 선배에게는 동백꽃을 수놓으며 작은 브로치 안에 사계절을 불러 모아 가득 메우며, 바늘과 나는 하나가 된다.
바늘귀에 마음을 속삭이고 바늘 끝을 따라가다 보면 수시로 생이 피어난다. 때로는 바늘과 실이 다퉈 배배 꼬이고, 엉뚱한 씨실과 날실 사이로 들어가 딴청을 부려 속을 썩이기도 하지만, 살살 달래가며 손끝 온기로 꽃을 피우다 보면 어느새 잠 때를 훌쩍 넘기기도 한다.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실과 바늘을 정리하고 있노라니, 귓가에 익숙한 음성이 들려온다.
“정수야~ 엄마 볼일 보고 올 때까지 할머니랑 이모랑 잘 놀고 있어”
유년시절 엄마가 나들이 하실 때는 매번 편물가게 하는 외할머니 댁에 맡겨졌고, 이모 두 분은 늘 편물 기계 앞에 앉아 뭔가를 짜고 계셨다. 외할머니께서 그 짜낸 조각들을 바늘귀가 크고 통통한 바늘로 꿰매면 하나의 털옷이 완성되었고, 그 작업을 `시아게` 한다고 말했다.
온갖 색실 속에서 옆에 앉아 털실을 갖고 놀았고, 그녀의 바느질 솜씨에 감탄하며, 하나의 옷이 완성될 때마다 박수를 쳐 드렸다. 그때가 바늘을 처음 알게 된 때였고, 바늘귀에 실이 꿰이면 뭐든지 이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쯤, 어머니가 직공 둘을 데리고 편물가게를 차리셨다. 나일론 옷이 질기다며 한창 유행하던 시절, 어머니는 서문시장에 납품을 시작했다. 알록달록한 엄마표 디자인은 항상 인기가 있어 밤늦도록 우리 집은 사르륵 사르륵 편물기계 소리가 울려 퍼졌고, 나에겐 자장가가 되었다. 나는 자연스레 일찍부터 바늘과 친해져, 굴러다니는 실로 이것저것 짜보며, 엄마 몰래 파랑 털실 한 뭉치를 꺼내, 엉성한 벙어리장갑을 떴다가 야단을 맞았다.
때로는 동네 양장점에 가서 천 조각을 얻어다 인형 옷을 해 입혀 엄마께 자랑하면, 대견해 하시면서도 여자가 손재주가 많으면 고생한다며 탐탁해 하지 않으셨다. 유년부터 실과 바늘 속에서 자라서인지 나도 모르게 어깨너머로 배운 바느질이 익숙했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바느질이나 자수 숙제가 나오면 늘 자신감으로 신이 났다. 친구들 앞에서 선생님의 칭찬과 최고의 실기 점수는 더없이 나를 으쓱하게 했고 가정 선생이 되는 꿈을 키웠다.
그러나 6.25사변 때 군인이셨던 아버지는 부상을 입고, 간호사의 치료를 받을 때마다 큰 위안을 받고, 훗날 큰딸은 꼭 백의의 천사를 만들겠다고 다짐하셨단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가정과를 가겠다고 하자
“가정과 안 나와도 콩나물만 잘 무친다”며 일축해 버리고 엄마는 울먹이는 나를 달래며 산파가 되면 의사 못잖게 대접받고 돈도 잘 번다며 한수 더 뜨셨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당시에, 아마도 두 분은 은근히 큰딸이 살림밑천이 되어주길 바라셨나 보다. 하지만 두 분의 기대와는 달리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바로 첫선 본 남자와 결혼했다. 집안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채, 23살 철부지 신부는 살림 살고 아이 키우느라 꿈은 아예 접고 살았다.
틈이 날 때마다 바늘이 그리웠다. 시어머님 첫 선물로 스웨터를 떠서 드렸고, 옷이며 레이스 받침 등을 만들거나, 십자수와 퀼트를 배운 작품들로 벽을 장식하기도 하며 바늘과의 교제를 이어갔다.
수예점의 자수 실을 볼 때마다 그 다양한 색감에 매혹되었고, 바늘에 예쁜 실을 꿰어 하얀 무명천 위에 마음껏 다양하게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로 남모르게 흥분하며, 언젠가는 꼭 전문 자수인이 한번 되어보리라 꿈을 품었다.
두 아이들이 커서 품을 떠나고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자 꿈을 찾아 나섰다. 수소문 끝에 알게 된 팔공산 근처의 명인 선생님을 찾아가, 일급 프랑스 야생화 자격증 과정을 마쳤다.
선생님은 과제가 주어질 때마다 나의 바늘땀과 색감이 곱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고 격려해 주셨다. 가는 길이 멀었지만 힘든 줄을 몰랐다. 새로운 스티치 기법에 감탄하며 가슴이 뛰었다. 꿈이 영글어 가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는 중매쟁이가 되어 예쁜 색으로 짝을 지우고, 린넨 천 위에서 밀당 놀이를 한다. 때로는 바늘의 질투가 너무 심해 조금만 한눈을 팔거나 딴 맘을 품었다간 가차 없이 삐딱선을 타고, 실까지 꼬여서 짜증이나 화를 내면 따끔한 맛까지 곁들여 심하면 피까지 봐야 한다. 하지만 바늘귀에 내 마음의 소리를 들려주고, 온 마음과 정성으로 사랑해 주면 단짝인 실과 함께 예쁜 집도 지어주고 온갖 꽃이 만발한 정원도 꾸며주며, 중세 시대로 돌아가 크레놀린 레이디와 놀기도 하고, 세상에서 하나뿐인 가방을 어깨에 걸쳐 주기도 한다. 실로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다.
바쁘게 돌아가는 자동화 로봇화가 되어가는 세상 한편에서, 자수는 아날로그 시대로 돌아가 조급함을 내려놓고, 한 땀 한 땀 온 정성을 다해 자신의 손끝 온기로 피운 바늘로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된다. 오로지 나를 사랑하며 사치를 한껏 부려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 돌고 돌아 바늘과의 끈질긴 사랑이 이루어졌다. 프랑스 자수 강사로 문화센터나 주민센터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다. 바늘과 함께 자수를 사랑하는 동호인들과 웃음꽃을 피워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참으로 작은 쇳조각에 불과한, 몸통 하나에 귀 하나뿐인 바늘 하나의 재주에 반해 꿈을 꿰었고, 노년은 그와 함께 희망을 꿰어 모두에게 예쁜 바늘꽃을 한 아름 선사하고 싶다.
손끝에서 가을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