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노동
나는 공기업에서 근무하다가 명예퇴직을 했다. 그렇다고 퇴직금으로 노후대책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무슨 일이라도 해야 했다. 설마 할 일이 없겠나 싶었지만 정말로 할 일이 많지 않았다.
기 수련원을 개원했다. 내가 건강관리 차원에서 수련하던 것을 이제 지도자급이 되었기에 수련원을 개원할 자격이 주어졌다. 적성에 맞는 일을 직업으로 하니 돈도 벌고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큰 수입은 아니더라도 즐기며 그럭저럭 십여 년을 운영해왔다. 노력이 부족했던지 경기가 좋지 않아서인지 활짝 펴보지 못하고 끝내 수련원도 불경기의 늪에 빠졌다. 시나브로 무논 마르듯 말라가는 모습을 안타까워하며 손을 털어야 했다.
어느새 나이가 걸림돌이 되었다. 그래도 수입이 있어야 하기에 일을 멈출 수는 없었다. 어떤 일이라도 해야 했다. 그동안의 연륜은 오히려 더께가 되어 어깨를 눌렀다. 마땅한 일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중에 아파트 공사장에서 도배 일을 하고 있다는 지인을 만났다. 나보다 나이가 몇 살이나 더 많기에 나도 충분히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에게 일자리를 부탁했다. 그렇게 아파트 공사장에서 도배 일을 하게 되었다.
나에게 직접 일을 시키는 사람을 반장이라 불렀다. 그렇지만 그는 도배의 한 부분을 하청받아 작업을 완수하는 책임자이며 나에게는 사장이었다. 첫 만남과 동시에 당장 출근할 수 있느냐고 물어왔다. 그렇다고 대답하니 준비되는 대로 출근하라고 했다. 쉽게 일자리를 구했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외환 위기로 실업자가 널려있는 요즈음 나이 먹은 나에게 남겨진 일자리가 과연 어떤 곳일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에 바로 출근했다. 근무복이라야 집에서 입던 헌 옷을 가지고 갔다. 오랜만에 입어보는 근무복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내가 좋아하는 직장에 다닐 때는 그렇게도 평범했던 근무복이 이렇듯 나를 감동케 하다니…. 별것 아니라고 흘려보냈던 날들이 소중한 과거가 된다는 것을 그때 다시금 느꼈다.
가정집 도배는 알겠는데 아파트 공사장의 도배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이 나이에 도배를 배우러 가면서 설레는 마음이라니. 정말로 낯섦과 궁금증으로 마음이 두근거렸다. 드디어 낯선 곳에서 난생처음 해보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지금껏 내 머릿속의 상상은 전혀 맞지 않았다. 아파트 도배는 전부 낯선 일이었다. 가정집 도배가 가업이라면, 아파트 도배는 공장 일이었다.
모든 일이 머리보다는 몸이 건장해야 하는 일이었다. 무거운 벽지를 옮기는 일도 그렇고, 풀 한 봉지의 무게도 만만치 않았다. 도배라고 하지만 아파트 공사장의 도배는 역시 막노동이었다. 작업 매뉴얼이 있는 것도 아니요, 일에 적응하도록 순차적으로 시키는 것도 아니었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아이 심부름시키듯 했다. 몸으로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저런 일을 시키는 대로 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흘러 일주일쯤 되었다. 그런데 몸이 말이 아니었다. 다리는 퉁퉁 붓고 무릎 관절이 시큰거려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었다. 모든 일이 내 작은 체구로 감당하기가 벅찼다. 계속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일을 소개해준 지인께 사정을 말하니 일주일 정도 지나면 몸이 서서히 풀릴 거라 말해 주었다.
사장은 나보고 벽지 풀칠하는 일을 전담하라고 했다. 풀칠도 벽지를 펼쳐놓고 손으로 칠한다는 생각만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풀칠하는 기계가 따로 있다. 먼저 재단할 벽지의 치수를 기계에 입력한다. 두루마리 벽지를 걸어놓고 기계를 가동하면 벽지가 풀칠 되어 나오며 입력한 데이터대로 벽지가 절단된다. 자칫 벽지가 구겨져 나오면 전부 불량이 된다. 기계에서 나오는 벽지가 제대로 자리를 잡으며 쌓이는지를 관찰하며 유도하는 일이다.
기계 앞에 앉으니 내가 어느새 숙련된 기술자라도 된 듯 뿌듯한 마음이었다. 풀칠만 하는 단순 작업이지만 처음 하는 일이라 긴장감을 떨칠 수 없었다. 기계가 돌아가는 속도를 최소치에 맞추었다. 저속으로 돌아가니 잘못되면 순간 멈추면 된다. 그렇게 숙달이 되면 차츰 속도를 올리면 되는 것이다. 남들은 하찮게 볼지 몰라도 첫 작품을 스스로 해냈다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내 업무는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하던 막노동보다는 조금 수월할 것 같았다.
세상에는 숙성해야 제맛을 내는 것들이 많다. 벽지도 풀칠하여 하루 정도 숙성을 시켜야 벽에 착착 잘 달라붙는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 풀칠한 벽지를 하루 묵혔다가 공급해준다. 그리고 보니 우리네 삶도 숙성의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살아가며 습득한 지식을 잘 숙성 시켜 머릿속에 갈무리하여야 올바른 가치관으로 정립이 될 것이 아닌가 말이다.
막상 내 책임하에 일이 시작되니 힘든 게 마찬가지였다. 풀칠 된 벽지는 두 배, 세 배 더 무거웠다. 그 무거운 벽지를 옮기는 게 내 체력으론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벽지를 운반용 손수레에 싣고 도배하는 방에 분배해주는 일 또한 나의 몫이었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도배를 시작할 수 있도록 벽지를 공급해야 했다. 바쁠 때는 저녁에 미리 약간의 벽지를 공급해주기도 한다.
벽지에 풀칠하는 일은 그나마 할 수 있겠는데 풀칠한 벽지를 운반하는 일은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백 개를 열 번에 나르라면 그건 가능하다. 그런데 두 번에 나르라면 내 힘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 세월이 흘러 숙련이 되면 되겠지 하면서 하루하루를 넘겨보았지만 조그만 내 체구는 적응하지 못했다. 내 체력으로는 기본적으로 감당할 수 없음을 알았다. 결국, 막노동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한탄하며 그만두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