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송(翠松) 2022. 3. 19. 09:35

밑동에 핀 꽃

만화방창 꽃의 계절이다. 목련이 지는가 싶더니 지금은 벚꽃이 한창이다. 길가에 만발한 벚꽃이 가던 이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다. 파란 하늘에 하얗게 터지는 꽃송이들이 팝콘을 뿌려놓은 듯 장관이다. 벚꽃에 취해 발걸음조차 휘청거린다. 길가의 노거수 같은 벚나무들도 어김없이 꽃을 피웠다. 어느 벚나무 아래를 지날 때였다. 나무뿌리에 낙화인 듯 꽃송이 몇 개 붙어있다. 멈추어 자세히 보니 그것은 떨어진 꽃이 아니라 나무 밑동에서 핀 꽃이었다. 영양분을 줄기와 가지로 보내지 않고 뿌리에서 바로 꽃을 피운 듯 소담하게 피어있다. 어느 계곡 바위틈에 홀로 피어난 이름 없는 야생화처럼.

나는 엊그제 먼지 수북이 쌓인 책장을 정리하다가 누런 봉투를 하나 발견했다. 슬쩍 열어보는 데 피식 웃음이 새 나왔다. 그것은 오래전에 보관한 장롱 면허증 같은 내 석사 학위증이었다. 학위증을 받고자 눈물겨웠던 과거를 고이 접어둔 채 서랍 속에 조용히 잠들어 있다.

내가 공부한 과정은 평탄하지 못했다. 한국전쟁 때 이북에서 피난 내려온 우리는 늘 가난한 살림이었다. 아버지가 험한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고, 어머니가 새벽에 선창에 나가 생선 장사를 한 덕에 어렵게 중학교에 갈 수 있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했지만 입학금을 내주지 않아 고등학교를 못가고 빈둥거리며 세월을 보내야 했다. 다음 해에 실업계로 진학했다. 실업계 고등학교는 다니기 편했다. 인문계 친구들이 밤늦게까지 공부하느라 힘들어할 때도 나는 하교 후 태권도 도장에 다니며 여유를 부렸다. 그래도 졸업하기도 전에 취업이 되었다.

회사생활도 학교생활처럼 쉬울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취업하여 회사 업무에 적응도 하기 전에 12시간 맞교대 근무를 해야 했다. 일요일도 근무하니 친구들을 만날 수도 없었다. 야간근무할 때는 더 힘들었다. 구석에서 신문지 조각을 깔고 잠깐 눈을 붙이려 하면 경비가 다니며 발로 툭툭 차며 깨웠다. 시간 외 근무와 밤일한 대가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미 다른 친구들은 거의 사표를 냈다. 대학에 간다고 나가고, 직장을 옮긴다고 나갔다. 나는 주춤거리다 뒤늦게 대학을 가겠노라고 사표를 냈다. 머리를 싸매도 공부는 쉽지 않았다. 세상사 모든 게 때가 있는 법이다. 고등학교 때 공부하지 않은 게 후회되었다. 이미 머리가 녹슨 듯 삐걱거렸다. 시간은 왜 이리 빨리 가는지 마음만 초조해 안달했다. 잠을 자지 않고 공부한다 해도 모자라는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공부하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공부한다니 마음이 몹시 상했던 모양이다. 내가 한 푼이라도 벌어 어려운 집안에 도움이 되어야지 언제까지 공부할 것이냐고 했다. 나는 집에 도움을 청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할 테니 간섭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방해는 도를 넘었다. 아버지는 하루도 취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 온종일 취해 흥얼흥얼 나에게 지청구를 늘어놓았다.

처음엔 나도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지 않은가 하며 버텨보았다. 어떠한 지청구도 못 듣는 척하며 책에 집중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신을 잃어갔다. 집중해도 모자랄 시간에 아버지의 방해까지 겹치니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내 마음은 서서히 포기 쪽으로 기울었다. 입학시험은 보았으나 낙방을 예견한 시험이었다.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빼도 박도 못하는 입대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학 공부는 한이 되어 내 가슴에 들어가고 말았다.

3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전역했다. 내가 군에 있는 동안 국립 방송통신대학이 생겼다. 다시 공부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때 나는 공기업에 다니고 있었기에 시간적 여유도 있었다. 방송통신대학에 입학했다. 학점을 이수하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방송을 들어야 했고, 남들이 잠든 늦은 밤에 방송을 들으며 공부해야 했다.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에 대학이 방학으로 쉴 때 우리는 출석 수업을 받아야 했다. 출석 수업을 받기 위해 회사에서는 동료에게 근무를 부탁하기도 하고 서로 바꾸어 근무하기도 했다. 그렇게 주경야독하며 전문과정을 졸업했다. 그 후 통신대학이 학사과정으로 승격하여 3학년으로 편입하였다. 전문과정의 경험이 있었기에 학사과정은 공부하기가 조금 수월했다. 통신대학 행정학과 학사과정 첫 졸업생이 되었다. 졸업식 날 어머니께 학사모를 씌어드리니 어찌할 줄 모르고 기뻐하셨다.

공부가 뭐 그리 재미있는 놀이라고 대학원을 가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공부를 위한 고생은 감내할 수 있는데 학비가 문제였다. 내 집도 없었고 아이들이 커가니 아이들 공부시킬 준비도 해야 했다. 학위를 받아봐야 별로 쓸 일도 없는 공부를 더 해야 하느냐는 갈등도 생겼다. 그렇게 일 년을 쉬다 보니 머리가 근질거렸다. 돈을 별로 안 들이고 학사과정을 마쳤으니 석사과정에 조금 더 투자하는 건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야간에 공부할 수 있는 특수대학원 복지행정 전공 과정에 입학했다. 특수대학원은 5학기 과정이다. 석사 과정을 마치고 논문을 쓸 때는 수준 높은 공부를 한 듯 마음이 뿌듯했다. 석사학위가 마치 내 인생의 목표를 달성한 듯 기뻤다. 하지만 어디에도 학위를 요구하는 곳은 없었다. 학위증이 무슨 나만의 보물인 양 잘 포장하여 보관함으로 들여보냈다.

나무 밑동에서 핀 꽃은 꽃이 아니랴, 오늘 나무 밑동에 핀 벚꽃 송이가 내 가슴의 꽃을 불러낸다. 지나가던 소녀가 밑동에 핀 꽃이 신기한 듯 한참 보다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