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빈자리
친구의 빈자리
작열하던 태양이 노을을 뿌리며 수평선 아래로 숨어든다. 무덥던 열기가 식으며 생동하던 바다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하얗게 일렁이는 작은 파도는 하늘과 바다를 구분하여주는 경계선이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여기저기 시커먼 바위들이 웅크린 동물처럼 괴기스럽다.
사위는 조용해 적막강산이고 파도 소리만이 음률처럼 찰싹거린다. 잠자리에 들기 위해 백사장에 쳐놓은 천막으로 들어와 눕는다. 백사장에 찰싹이는 해조음이 슬픔처럼 애잔하다. 여기저기 바위에 부딪혀 깨지는 파도 소리가 어떤 외침처럼 귓가를 때린다.
친구와 둘이서 오랜만에 온 바닷가다. 시끄러운 해수욕장을 벗어나 인적 드문 조그만 모래톱에 천막을 친 것은 예나 다름없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파도 소리가 정겨워야 하건만 듣는 마음이 편치 않다. 몇 년 만에 온 밤바다가 오히려 마음을 울적하게 한다. 우리가 바닷가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 친구는 셋이었다. 젊어서부터 다녔지만, 이순이 넘어서는 거의 해마다 거르지 않고 왔다. 홀아비들의 모임 같이 사내들만의 모습으로 즐겨 다녔다. 오랜 날을 지내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밤바다에서 파도 소리 들으며 하룻밤이라도 지내고 가면 한여름을 다 보낸 듯 뿌듯했다. 그런데 그동안 늘 다니던 바닷가를 오랫동안 오지 못했었다. 한 친구가 빠졌기 때문이다. 빠진 친구의 빈자리가 휑하다. 셋이 누워 좁다고 서로 밀치던 때가 오히려 그립다. 사람 빠져 넓은 자리가 빈 가슴처럼 공허하다.
몇 년 전이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열어보니 친구의 전화번호가 떴다. ‘오, 친구야’, 하고 반갑게 받으니 친구 아내의 음성이 들리는 게 아닌가. 가슴이 덜컥했다. 수화기 너머에선 듣지 말아야 할 말이 건너왔다. 친구가 쓰러져 입원했다는 말이었다. 거기다가 생명이 위독하다고 했다. 친구는 지인의 결혼식 축하를 위해 타 도시에 갔었다. 결혼식 피로연이 끝난 후 돌아오는 차 시각을 맞추느라 주위를 잠시 산책한다는 전화가 마지막이었다고 했다. 그 후 연락이 없기에 어디 다른 곳에 들렸나보다 했는데, 밤늦게 병원이라고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뇌경색으로 쓰러져 그곳의 병원에서 응급조치하고 대구의 대학병원으로 이송한 후에 나에게 연락했다.
내가 병원에 달려갔을 때 의사는 생존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뇌압 상승이 멈추지를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의사의 예측이 틀리기만을 바라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며칠 후 우리의 바람대로 친구가 깨어났다. 의사는 기적이라 했다. 하지만 친구의 깨어남은 완전치 않았다. 친구는 언어장애가 왔다. 말을 전혀 하지 못했다. 우리의 말을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도 가늠할 수가 없었다. 몸도 가누지 못했다. 내 얼굴이 그의 뇌리에 기억되어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 후 친구는 퇴원하여 재활병원으로 옮겨 재활 치료를 받았지만, 언어장애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 상태로 퇴원하여 집에 돌아오기는 했지만, 간신히 몸의 반쪽만을 쓰는 상태였다. 휠체어를 타야만 이동이 가능했고 그나마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만 움직일 수 있었다. 우리는 이따금 집으로 방문하여 친구와 소통 없는 만남을 이어갔다. 얼마 지나 그의 아내는 친구를 데리고 아이들이 있는 서울로 갔다. 언어 소통이 안 되니 전화로 연락을 주고받는 것도 못 하고 있다.
내가 처음 친구를 만난 것은 인천의 한 회사에 입사해서였다. 한번은 동료들과의 회식이 있는 날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술에 아주 약하다. 그때 술을 좀 과하게 했던지 취해버렸다. 나는 화장실에서 쪼그리고 앉은 자세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화장실에 간 내가 오지 않으니 친구가 찾으러 왔다. 여러 사람이 회식을 하고 있었으니 모를 수도 있었는데 나를 찾은 게 고마웠다. 그것은 우리를 서로 가깝게 만들어준 작은 사건이었다.
그 후 내가 대구 근교에 있는 공기업으로 회사를 옮기며 헤어졌다. 그 후 일 년쯤 지났을 때 회사 정문에서 전화가 왔다. 받아보니 친구였다. 반갑게 뛰어나가니 멀뚱하게 키가 큰 친구가 거기에 서 있었다. 친구도 나보다 일 년 정도 늦게 우리 회사의 공채 시험에 합격하여 함께 회사에 다니게 된 것이다.
지금 나와 같이 바다에 온 친구는 입사 동기다. 그렇게 셋이서 만나 유별나게 친하게 지내며 취미 생활을 공유하며 지냈다. 지금껏 산에도 같이 가고 바닷가에도 같이 다녔다. 어떤 때는 가족도 함께 다니기도 했다. 그런 친구가 변고로 빠졌으니 우리는 망연자실하여 한참 동안 바닷가에 올 수 없었다. 이제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정되어 오랜만에 둘이서 오게 되었다. 빠진 친구의 자리를 대신할 다른 친구는 없었다. 그러니 어디 마음이 마냥 즐거울 수가 있겠는가.
밤이 되니 마음이 더 애잔해진다. 밤바다의 해조음이 애잔하게 들려오고 구름은 달빛을 잠식한다.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열린 문으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희멀건 달이 먹구름 속을 뚫고 나오느라 안간힘을 쓴다. 친구의 빈자리가 가슴에 큰 웅덩이가 파진 듯 휑하게 느껴짐은, 내 가슴에 그만큼 크게 자리하고 있었던 탓일 것이다. 친구와 함께했던 날들이 사무치도록 생각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