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길
문화예술길
왕건 8길 중 네 번째 길은 문화예술길이다. 물넘재에서 백안삼거리까지 약 3.3 ㎞다.
산길만을 상상하며 걷던 올레길에서 만나는 문화예술길이라니 길 이름이 생뚱맞다. 산이야말로 인위가 배제된 순수 자연이 아니던가.
백과사전에는 문화란 자연 상태의 사물에 인간의 작용을 가하여 그것을 변화시키거나 새롭게 창조해 낸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즉 문화는 자연 그대로가 아닌 인위적이라는 뜻이 포함된 개념이다. 그리고 예술은 사용된 매개물이나 제작물의 형태에 의해서 전통적으로 범주화된 몇 가지 표현 양식 중의 하나를 지칭한다. 또 여러 가지 미적 표현 양식들을 개별적으로 예술이라고 말하며 이 모든 것을 통틀어서 또한 예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럼 문화 예술은 무엇인가. 말 그대로 문화와 예술을 융합한 복합어다. 문화라고만 하기에는 범위가 너무 넓고, 예술이라고 하기에는 범위가 너무 좁기 때문에 문화와 예술을 융합하여 예술 활동이 있는 문화를 나타내는 것이다. 문화 예술은 문학예술, 영상예술, 공연예술, 전통예술, 음악 예술 및 문화 활동 모두를 포함한다.
물넘재를 넘어 임도를 조금 걸으니 바로 백안삼거리로 가는 대로가 나타난다. 지금껏 공기 좋은 숲길만 걸었는데 인도이기는 하나 버스가 다니는 대로 가를 걸어야 한다. 현대의 문화 예술을 만나는 어쩔 수 없는 과정이리라. 얼마 걷지 않으니 방짜유기박물관이 보인다. 왕건 이야기가 있는 역사 길에서 문화 예술을 만난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다. 방짜유기는 두들겨 만드는 놋그릇을 말한다. 어쩌면 방짜유기는 옛것을 아우르는 현대문명이기도 하다. 잠시 방짜유기 박물관을 관람하기로 한다.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인 유기장 이봉주 옹이 평생 제작하고 수집한 방짜유기 275종 1,489점을 대구시에 기증한 것을 전시하고 있다.
방짜유기는 최근 각종 실험을 통해 병원균, O-157 살균기능, 농약 성분 검출기능 등이 밝혀졌고, 또한 열 보존율이 사기그릇이나 스테인리스 그릇보다 더 높다고 한다. 방짜유기는 우리 선조들이 사용하던 옛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현대에 사용하는 악기, 제기, 식기 및 각종 생활용품 등으로도 제작되고 있다. 이렇듯 올레길에서 만난 문화 예술을 통해 우리 선조의 유능함을 다시 생각하게 되니 가슴이 뿌듯해 온다.
내가 어렸을 적에 우리 집도 놋그릇을 사용했다.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유기 공출이라는 명목으로 각 가정에 소유한 유기들을 공출했다지만 몽땅 가져가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집집마다 명절이나 무슨 특별한 날이면 놋그릇을 윤이 반들반들 나도록 닦는 게 또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유기그릇들이 어떻게 없어졌는지 잘 모르겠다. 언젠가부터 스테인리스 그릇과 사기그릇으로 슬그머니 바뀌며 놋그릇이 자취를 감추었다.
박물관을 나와 길을 건너면 시인의 길이다. 길 가장자리에 일렬로 늘어선 돌에는 이미 고인이 된 유명한 시인들의 시는 물론 현재 대구 문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인의 시가 새겨져 있다. 아는 작가의 시비를 볼 때는 직접 얼굴을 본 듯 더욱더 반갑다. 돌에 새겨진 시구가 자연에 녹아든 듯 편안하다. 시인의 길 가운데 위치한 돌집 마당은 쉬어가는 자리다. 시인의 길은 평생 시에 남다른 관심을 두고 살아온 돌 수집가 채희복 씨가 20여 년간 고서점을 돌아다니며 수집한 국내 시인들의 육필 시 가운데 23편을 선정해 바위에 새겼다고 한다. 시인의 필체 그대로 바위에 새겨진 시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 더욱 감상적으로 다가온다.
나도 수필을 쓰고 있다. 수필은 내 삶의 궤적을 그대로 진솔하게 그려내는 문학이다.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내 하고픈 이야기를 쓰면 될 테니까. 시인의 길을 걷자니 장르는 다르지만, 작가와 동료의식이 느껴져 더욱 다감해진다. 돌비석에 새길 글 한 편 없다고 아쉬워하는 것은 나의 지나친 욕심일 것이다.
문화 예술 길엔 또 멋진 곳이 있다. 눈앞에 신묘한 돌 조각품들이 보인다. 남근석 조각장이다. 남근석 조각품을 보니 몇 년 전 내가 속한 문학회에서 한번 왔었던 기억이 되살아나며 얼굴에 살짝 미소가 번진다.
그때 산을 한 바퀴 돌아 이곳으로 왔다.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석 조각품 전시장으로 들어섰다. 조각품들은 전부 한 종류다. 크기와 굵기가 다를 뿐 전부 같은 남근 조각품이 하늘을 향해 우뚝우뚝 서 있다. 남근은 인류 존재의 근원이 아니겠나.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는 어느 남자 회원의 시선을 좇는다. 조각품을 한 번씩 보고는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보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피식 웃었다. 무엇을 비교했을까. 여자들의 감상 포인트는 다르지 싶었다. 어떻게 감상하였을까, 궁금했다. 조각품을 자연스레 끌어안고 사진 찍는 여인의 모습이 섹시해 보였다. 그런데 여인은 얼굴을 살짝 숨겼다. 무엇이 부끄러워서였을까.
요즈음 성문화의 퇴락으로 성폭행이니, 성추행이니 하는 보도가 하루도 나오지 않는 날이 없다. 성을 상징하는 거대한 석물이 자연스레 노출된 것을 보니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성은 살아있는 것들의 종족 보존을 위한 가장 성스러운 가치가 아닐까.
문화예술길은 거리가 좀 짧다. 전시장을 나와 얼마 걷지 않으니 백안삼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