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송(翠松) 2022. 3. 27. 09:10

이팝나무

동네 뒷산을 자주 오른다. 산 밑으로는 그다지 길지 않은 시골의 신작로 같은 흙길이 쭉 뻗어있다. 저쪽 길 끝에서 달구지라도 나와 덜컹거리며 올 것 같은 시골 정취를 흠뻑 담은 길이 마냥 여유롭다. 어쩌다가 차를 타고 오는 사람들이 흙먼지를 일으킬 때는 시골의 황톳길을 걷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쭉 뻗은 거리의 한쪽에는 벚나무 가로수가 열병 받는 병사들처럼 일렬종대로 서 있다. 한 달 전쯤만 해도 청명한 하늘에 팝콘이라도 터뜨린 양 하얗게 터진 벚꽃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지금은 길 건너 반대쪽에서 이팝나무가 같은 모양으로 서서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 흐드러지게 핀 꽃을 보노라면 하얀 쌀밥이 수북한 유기그릇을 보는 듯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이팝나무의 학명은 치오난투스 레투사이다. 하얀 눈꽃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보면 정말 하얀 눈을 뒤집어쓴 상록수 같은 자태로도 보인다. 그런데 아무래도 꽃피는 계절과 어울리지 않아 실감이 덜하다. 우리의 정서로 보는 시각은 다르다. 멀리서 바라보면 꽃송이가 사발에 소복이 얹힌 흰 쌀밥처럼 보여 이밥나무라 했으며, 이밥이 이팝으로 변했다고 한다. 나무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도 전해지는데, 이 꽃이 여름이 들어서는 입하에 피기 때문에 입하목이라 불리다가 입하가 연음되면서 이파, 이팝으로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고 토지개혁을 시행할 때, 백성들에게 이밥을 주겠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는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정말 배고팠던 어린 시절을 살아왔기 때문일까. 나도 길가에 하얗게 핀 꽃을 보는 순간 하얀 쌀밥이 먼저 생각났다. 꽃잎조차도 하나하나 쌀 밥알 같이 생겼다. 아마도 이 나무는 태어날 때부터 가난한 이들의 마음을 달래주려 태어난 나무가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이팝나무가 꽃을 풍성하게 잘 피우면 그해에 풍년이 든다고도 한다. 이팝나무꽃이 이렇게 풍성하게 피었으니 올해는 풍년이 들 모양이다.

이팝나무꽃은 보면 볼수록 매력이 있다. 열에 못 이겨 터지는 팝콘처럼 일시에 화르르 피었다가 시드는 벚꽃이 서구적 아름다움이라면 이팝나무꽃은 은은하면서도 우아한 멋을 지닌 동양적 아름다움을 지녔다. 벚꽃이 잎도 나오기 전에 꽃을 피워 혼자만의 자태를 뽐낸다면 이팝나무는 적당히 연둣빛 잎을 낸 다음에 피어 백록(白綠)의 조화를 이루어 더욱 아름다운 꽃이다. 순결한 백색의 이팝나무 꽃말은 영원한 사랑이다. 하얀 쌀밥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영원한 사랑이 아니겠나.

피난살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던 내 어린 시절이었다. 전쟁통에 온 나라가 폐허가 된 상태였기에 빈곤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다. 한 푼이라도 모아 식구가 거처할 집을 장만하기 위해 먹는 것을 더 절약해야 했다. 끼니때마다 수저를 놓으면서 보리밥이라도 한번 실컷 먹어봤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보리밥이 주식이었지만 저녁은 늘 국수를 삶아 먹었다. 나는 매일 국수 사 오는 일을 담당했다. 동네의 작은 시장에 국수를 만드는 공장이 있었다. 그곳엔 하얀 국수가 빨랫줄에 기저귀 널려있듯 치렁치렁 늘어져 있었고 국수를 사러 가면 저울에 달아서 신문지에 둘둘 말아주었다. 하지만 매일 저녁 먹는 국수는 지겨웠다. 고명도 없이 오직 굵은 멸치 삶은 물에 풀어주는 국수를 매일 먹는다는 건 고문처럼 힘들었다. 쌀밥 한번 먹어봤으면 원이 없겠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우리에게 쌀밥은 상상 속의 밥이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어머니가 아침 밥상을 차렸는데 두리반 한가운데에 하얀 쌀밥이 한 그릇 있었다. 늘 먹는 보리밥 그릇들 속에 반짝반짝 빛나는 쌀밥이 달랑 한 그릇만 있었다. 그것도 특별히 유기그릇에 고봉으로 높이 솟아있는 밥이었다. 우리는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명절의 차례상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침에 무슨 제사상도 아닐 테니 말이다. 형과 누나와 동생들도 모두 수저를 든 채 어리둥절하여 손을 못 대고 있었다. 그래도 참으로 오랜만에 쌀밥이 하얗게 빛나고 있는 밥상을 보고 있자니 신기하기도 하고 황홀하기도 했다.

다들 입을 쩝쩝 다시며 어머니가 부엌에서 빨리 들어오시기만을 기다렸다. 잠시 후에 들어오신 어머니는 하얀 쌀밥 그릇을 내 앞으로 쑥 밀어주셨다. ‘오늘 네 생일이다.’ 더는 다른 말은 없었고 식구들은 밥을 먹기 시작했다. 어찌 생일이라고 나 혼자 쌀밥을 먹을 수가 있을까. 나는 잠시 목이 메어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머뭇거리는데 어머니는 빨리 먹으라고 재촉하셨다. 다른 형제들도 괜찮다고 하면서 빨리 먹고 학교에 가라고 거들었다.

얼마나 먹고 싶었던 쌀밥인가. 밥그릇도 어른 밥그릇이었다. 배가 터질 만큼 한 그릇을 다 먹었다. 하얀 쌀밥은 입에 들어가면 씹을 것도 없이 살살 녹는 맛이었다.

등산 가는 길가의 하얀 꽃이 수북한 나무를 보고 있노라니, 내 생일에 먹었던 커다란 유기그릇에 고봉으로 올라간 하얀 쌀밥이 생각난다. 쌀밥은 싱겁다고 일부러 잡곡밥을 해 먹는 지금과는 격세지감이 들지만, 하얀 쌀밥을 고봉으로 담아 주셨던 어머니 마음은 그대로 남아있다. 지금도 그때의 하얀 쌀밥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내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이팝나무꽃이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