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을 위한 배려
소통을 위한 배려 / 김영희(2016 은상)
골목을 꺾어 고샅길로 접어드니 지엄한 고택이 눈길을 붙든다. 솟을대문에 담장이 높아 깨금발을 하여도 안을 가름할 수 없다. 높은 담장을 지나 마당에 들어서니 사랑채와 안채가 객을 반긴다.
청도 운강고택은 밀양박씨의 세거지로 안과 밖이 분리된 양반가옥이다. 상하의 구분이 엄격하던 시절 안채와 사랑채가 미음(ㅁ)자형으로 지어졌다. 자연의 산세를 닮은 곡선의 지붕과 실용성을 추구하는 한옥의 조형미에 눈길은 자연스럽게 안채에 머문다.
안채는 정갈하고 아담하지만 지엄하신 안방마님이 대청마루에서 객의 방문을 맞이할 것 같아 옮기는 발자국이 조심스럽다. 가풍과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한 위엄 잇는 종부의 모습이 그려진다. 안채의 구조는 안방과 대청마루 새색시 거처인 작은 사랑이 있다. 마루는 간결하며서도 다사롭다. 검소하고 고풍스러운 방과 바 사이에 대청마루를 둔 것은 한 지붕 아래에서 갓 시집 온 새색시가 숨을 쉴 수 있는 여유와 소통을 위한 배려이다.
새댁은 집안일과 가풍을 익히느라 새벽부터 저녁까지 갇힌 일상을 맴돌았을 것이다. 사랑채에 집안 어른이 오시면 손님상 준비로 바쁜 일과 속에서 잠시나마 쉴 수 있는 곳이 자신의 방이다. 대청을 사이에 두었으니 시어머님의 부름에 옷매무새를 단정히 할 수 있는 여유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부부나 고부간의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대청마루의 공간은 조심스러운 며느리를 배려하기위한 자구책이다.
한옥의 구조는 문을 안에서 잠근다. 그러나 작은 사랑에는 신랑의 출입이 가능하도록 바깥에서 문을 열 수 있다. 어둠이 짙어 별 빛이 내려앉는 정적이 깃들면 신랑은 새색시 방을 월담하듯 설레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부부는 만나는 시간에 비례해 정이 돈독해지며 대를 이를 아기도 생기는 것이다. 하루 속히 자손을 보기위한 조상들의 배려였다.
운강고택에는 사랑채와 안채를 암묵적으로 연결해주는 방이 잇다. 가족만이 드나들 수 있는 내밀한 공간이다. 늦은 밤 대감님이 사랑채에서 안채로 가고 싶을 때 이 방을 통해서 출입하는 공간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랑채이지만 사랑채와 안채를 연결하는 통로였다. 이 방은 친정아버지가 보고 싶은 딸을 찾아오면 소통과 정담을 나누는 곳이기도 하다. 고택은 영남지방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으로 곳곳에 숨통을 트여주는 조상들의 삶의 철학과 배려가 숨어있다. 소통의 공간은 마음을 쉬게 하는 숨길이다.
해설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젊은 남자가 사랑채와 안채를 연결해 주는 방으로 문을 열고 들어간다. 모두의 시선은 남자에게 모아진다. 남자는 방문 사이로 두 눈을 빼꼼이 내밀며 몰아뜬 눈으로 주변의 눈치를 살피더니 뒷짐을 지고 팔자걸음으로 안방으로 향한다. 그는 아내를 부르며 며칠 전 다투었으니 화해하자며 안방으로 들어오라고 소리친다. 그의 아내와 주변사람들은 박장대소한다. 남자의 돌발적인 행동은 서먹했던 부부 사이에 물꼬를 튼다.
대청마루를 보고 있으니 어린 시절 숙모의 숨통을 터 준 할머니의 배려가 생각났다. 방학이 되어 시골 할머니 댁에 가면 결혼 한지 몇 년 된 숙모가 방에 홀로 기거했었다. 객지에서 삼촌이 가끔 오셨으니 아이가 생기지 않았지만 숙모는 자신의 잘못인양 고개를 들지 못했다. 삼촌이 오는 날에는 할머니와 숙모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할머니는 아들 얼굴을 본다는 이유로, 숙모는 남편이 오니 자연스럽게 기분이 들떴다. 숙모의 유일한 낙은 삼촌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삼촌이 오는 날이면 숙모는 새벽부터 분주했다. 화장을 곱게 하고 마음이 바빠 허둥지둥거리며 평소에는 하지 않던 실수로 할머니의 지청구를 들었다. 목 빠진 기다림 끝에 석양이 기울고 어스름 무렵이면 삼촌은 짐 보따리를 들고 버스에서 내렸다. 숙모는 창으로 삼촌의 그림자가 보이면 얼굴에 화색이 돌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주위의 시선 때문에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마당과 부엌을 서성이며 초조하게 기다렸다.
평소에는 지엄하신 할머니도 이 날은 저녁을 먹고 나의 손을 잡으며 친척 집에서 자고 오겠다며 언지를 주셨다. 좁은 쪽마루를 두고 나란히 있는 방이라 조심스러운 며느리의 마음을 할머니는 알아채신 것이다. 부부의 합방을 축수하며 속히 손자를 보고 싶은 할머니가 해 줄 수 있는 배려였던 것이다. 오랜만에 아들을 마주하며 이야기하고 싶지만 ㅣ숙모에게 편히 쉴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부부의 합방을 푸근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게 한 것은 할머니만의 배려 방식이다.
고즈넉한 분위기에 대청마루에 서서 보는 풍경이 이채롭다. 사람을 한자리에 오랫동안 잡아 두는 깊은 감흥이 있다. 안채는 사랑채보다 지대를 높여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다. 안채의 대청마루에서 사랑채의 담장이 내려다보인다. 이곳에서 키가 덜 자란 아씨가 깨끔발을 내디디며 부모님이 맺어준 인연이 궁금하여 정인을 몰래 훔쳐보았을 것이다. 언뜻 옆모습을 보여주며 지나간 인연에 아스라한 여운이 남아 오래도록 목을 빼고 바라보았으리라. 설레는 마음을 진정할 수 없어 마루를 서성이다 돌아가는 뒷모습을 눈에 담았던 곳도 대청마루에서였다. 남녀가 내외하였으니 얼마나 많은 궁금증이 있었을까.
새댁은 담 너머로 들리는 낯익은 소리에 친정아버지라도 오셨나싶어 내밀하게 바라본 것도 대청마루에서였다. 내외법이 엄격하여 여인네들의 출입이 제한된 시절 그 담장만 넘어서면 이 세상을 다 볼수 있을 것 같은 여인네의 마음을 헤아린 자구책이었다.
대청마루는 많은 관습으로 묶여진 삶이 힘들 때 숨을 돌리는 공간이다. 세상을 숨바꼭질하듯 몰래 숨어보는 재미가 있다. 집안의 내력에 따라 한옥의 곳곳에 소통과 숨 쉴 공간을 마련해준 조상들의 해안에 발길이 오래도록 머문다. 갇힌 삶이지만 긍정으로 위안을 찾고 행복이 통했던 조상들의 배려에 무형의 가치를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