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집 *생선비늘*/5부 팔공산 10

왕건길 탐방 후기

왕건길 탐방 후기 특집으로 왕건길을 실었다. 왕건길은 대구 북쪽에 위치한 팔공산 주위를 걷는 여덟 개 구간의 올레길이다. 이곳에는 고려 태조 왕건의 역사가 있다. 신라의 요청을 받고 도우러 왔던 고려 태조 왕건은 오히려 팔공산에서 후백제의 견훤에게 포위당한다. 동수전투에서 대패한 고려군은 파군하게 된다. 왕건은 신숭겸의 위왕대사(爲王代死)로 겨우 목숨을 부지하여 구사일생 탈주에 성공한다. 새소리, 풀벌레 소리 가득한 울창한 숲속을 거닐며 우리의 역사를 되새겨보는 맛이 즐거웠다. 그 전에 올레길 중 몇 곳은 가본 적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번에 첫길부터 순차적으로 걸으며 탐방해 보기로 했다. 그렇다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놓고 맞추어 다닌 것은 아니다. 그냥 시간 나는 대로 한 구간도 걷고 두 구간도 걸었..

구사일생길

구사일생길 왕건 8길 중 마지막 길은 구사일생길이다. 초례봉에서 동곡지까지 약 4㎞의 하산 길이다. 초례봉의 명칭은 몇 가지 전설을 지니고 있다. 나무꾼이 초례봉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선녀를 만나 초례를 올리고 백년가약을 맺었다는 설, 왕건이 시량이에서 흩어진 군사를 모아 전열을 재정비해 초례봉에서 승리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 설, 또 호족이 왕건을 알아보고 자기 딸을 아내로 바쳐 초례를 치르게 하였다는 전설도 있다. 또 이곳에서 초례를 치르면 반드시 아들을 낳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가팔환초길이 올라가는 길이라면 구사일생길은 내려가는 길이다. 견훤에게 패퇴한 왕건이 겨우 목숨 부지하여 도망간 길이 맞을까. 그렇다면 지금껏 걷느라 힘들어 다리가 휘청거리는 내 발걸음보다 더 힘든 발걸음이 아니었겠나..

가팔환초길

가팔환초길 왕건 8길 중 일곱 번째 길은 가팔환초길이다. 매여동 버스 종점에서 초례산 정상까지 약 3.3 ㎞의 오름 길이다. 산속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매여 마을이다. 이곳은 주변 산이 모래가 섞여 매화처럼 흰색을 띠고 있고, 산이 오목하고 매화 모양이라 그 이름을 매여 마을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경북대학교 학술림을 지나 조금 더 걸으니 오른쪽으로 초례산 입구가 보인다. 입구를 들어서 조금 걸으니 사방댐이 있다. 산사태를 방지하기 위하여 만든 조그만 댐이다. 댐을 지나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인데 오르기가 만만치 않다. 정상이 가까워지는 모양이다. 오르면 오를수록 다리에 힘이 빠진다. 여기저기 미끄러운 마사토가 많아 지친 다리를 더 힘들게 한다. 마사토도 천년 세월 풍화에 제 몸 ..

호연지기길

호연지기길 왕건 8길 중 여섯 번째 길은 호연지기길이다. 평광동 버스 종점에서 매여동 버스 종점까지 약 5㎞다. 평광 버스 종점에서 호연지기길로 향한다. 이 길은 또한 첨백당(瞻栢堂)으로 가는 길이다. 첨백당은 호연지기길로 들어서는 곳의 이정표를 지나 조금 걸으면 나타나는 아담한 고택이다. 첨백당은 우효중의 효행과 우명식의 충성심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단양 우씨 재실이다. 1896년에 지어진 충효의 상징적 건물로 지금은 대구광역시의 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첨백당이라는 이름은 우명식 선생의 묘소가 있는 ‘잣밭골(栢田谷)을 우러러보는 집’이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에 단양인 우씨가 뿌리를 내리고 대대로 살게 된 것은, 임진왜란 때 우익신이 경기도 여주에서 난을 피해 이곳에 정착하여 ..

고진감래길

고진감래길 왕건 8길 중 다섯 번째 길은 고진감래길이다. 백안 삼거리에서 평광동 버스 종점까지 약 5.28 ㎞다. 백안 삼거리에서 왕건길로 접어든다. 며칠간 계속된 불볕더위로 인한 열기가 아직도 식지 않았다. 호젓하게 서 있는 육각정의 백안 쉼터도 더위에 늘어져 그늘막 노릇은커녕 땀을 쥐어짤 듯하다. 무심히 그냥 지나쳐 바로 왕건길로 들어선다. 산자락으로 들어서니 바로 키 큰 나무들이 그늘을 선사한다. 처음부터 오름길이다. 숨이 턱턱 목까지 차오를 즈음에야 평지길이 나타난다. 조금 숨을 돌리며 걸을만하다 했는데 다시 오름길이다. 이렇듯 산길은 늘 오름과 내림을 반복한다. 고진감래의 기쁨을 누리려면 이 정도의 더위와 이 정도의 헐떡임은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오름길을 다 올랐다는 뜻일까, 깔딱재란 표지판이..

문화예술길

문화예술길 왕건 8길 중 네 번째 길은 문화예술길이다. 물넘재에서 백안삼거리까지 약 3.3 ㎞다. 산길만을 상상하며 걷던 올레길에서 만나는 문화예술길이라니 길 이름이 생뚱맞다. 산이야말로 인위가 배제된 순수 자연이 아니던가. 백과사전에는 문화란 자연 상태의 사물에 인간의 작용을 가하여 그것을 변화시키거나 새롭게 창조해 낸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즉 문화는 자연 그대로가 아닌 인위적이라는 뜻이 포함된 개념이다. 그리고 예술은 사용된 매개물이나 제작물의 형태에 의해서 전통적으로 범주화된 몇 가지 표현 양식 중의 하나를 지칭한다. 또 여러 가지 미적 표현 양식들을 개별적으로 예술이라고 말하며 이 모든 것을 통틀어서 또한 예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럼 문화 예술은 무엇인가. 말 그대로 문화와 예술을 융합한 ..

묵연체험길

묵연체험길 왕건 8길 중 세 번째 길은 묵연체험길이다. 부남교에서 물넘재까지 약 5.4 ㎞다. 묵연의 사전적 의미는 입을 다문 채 말없이 조용히 하는 것이다. 부남교를 건너니 조용한 시골 동네가 나타난다. 용수동 상중심 마을이다. 산속 마을은 그 삶 자체가 묵연이 아니겠나. 조용한 마을을 지나자니 내 마음도 절로 진중해지는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풍스러운 옛집이 보인다. 달성 서씨 재실인 중심재다. 그 옆으로 육각정의 정자가 있다. 묵연 센터다. 몸도 쉴 겸 잠시 마루에 앉는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깊게 들숨 날숨 하며 묵연을 체험해본다. 묵연은 몸이 아닌 마음으로 하는 것, 갈 길 바쁜 사람에게 어디 묵연이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던가. 다시 일어나 바쁘게 갈 길을 재촉한다. 묵연 센터를 지나 소..

열린하늘길

열린하늘길 왕건 8길 중 두 번째 길은 열린하늘길이다. 열재에서 부남교까지 약 4.5 ㎞다. 왕건 1길의 끝자락에서 만난 열재(十嶺)는 두 번째 길의 시작점이다. 길을 들어서기 전에 열재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안내판을 들여다본다. 이 고개는 신라 시대에 영천에서 능성재-미대동-열재-기성동-여릿재를 거쳐 군위로 이어지던 교통의 요충지로, 당시에는 열 사람이 다닐 수 있을 만큼 넓었기에 열재로 불렸다고 한다. 또한 옛날에는 산세가 험악하고 산적들이 많아 열 명 이상이 모여서 이 고개를 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1942년 서촌 초등학교가 생기기 전에는 중대동 일대의 어린이들은 열재를 넘어 공산초등학교에 다녔다고 한다. 한참을 지체했는데도 오가는 사람이 없다. 깊은 산 속에 홀로 있는 것 같다. 그 옛날에 많은..

용호상박길

용호상박길 왕건 8길 중 첫 번째 길은 용호상박길이다. 신숭겸 유적지에서 열재까지 약 4.3 ㎞다. 고려 태조 왕건의 이름을 붙인 길을 왜 신숭겸 유적지에서 시작할까. 신숭겸 유적지에 들어선다. 아침 햇살 가득한 뜰 안이 고요하다. 홍살문 너머에는 왕건을 위해 목숨 바친 신숭겸의 넋이 배어있는 순절단이 보인다. 당시의 처절했던 상황을 회상해 보니 마음이 어지럽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천년 사직을 이어왔다. 천년은 너무 긴 세월이었나, 신라는 서서히 그 힘을 잃어갔다. 옛 백제 땅에는 견훤이 그 세를 떨치고 북쪽 땅에는 고려의 왕건이 있었다. 북쪽 땅 고려는 처음에는 궁예가 일으킨 태봉이었다. 후에 신숭겸과 김락이 홍유, 배현경, 복지겸과 함께 혁명을 일으켜 폭군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대해 고려를 건..

팔공산

팔공산 팔공산 능선 길을 걷는다. 높은 하늘은 청명하고 옷깃으로 스며드는 가을바람이 상쾌하다. 나는 등산을 할 때마다 산길이 인생길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련한 기억 속의 일이다. 늘 다녀 익숙한 팔공산에서 길을 잃어 헤맨 적이 있었다. 회사 직원 몇이 어울려 파계재로 올라 능선 따라 동봉까지 가서 하산하기로 했다. 계절은 겨울의 초입이지만 산속의 감나무에는 알알이 매달린 홍시가 속살을 파고드는 서리를 견디어내며 가을을 붙들고 있었다. 북쪽의 나무들은 월동준비가 끝난 듯 잎 떠나보내고 조용한 침묵에 잠겼고, 남쪽의 나무들은 양지바른 곳에 앉아 노는 아이들처럼 속살거리고 있었다. 파계재부터 동봉까지는 완만하게 오르는 능선 길이다. 사방이 확 트인 능선 길의 시원함이 폐부 깊숙이 파고들었다. 아름다운 경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