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의 여유 25

팬티

팬티 / 임보 문정희의 [치마]를 읽고서.... 그렇구나 여자들의 치마 속에 감춰진 대리석 기둥의 그 은밀한 신전 남자들은 황홀한 밀교의 광신들처럼 그 주변을 맴돌며 한평생 참배의 기회를 엿본다 여자들이 가꾸는 풍요한 갯벌의 궁전 그 남성 금지구역에 함부로 들어갔다가 붙들리면 옷이 다 벗겨진 채 무릎이 꿇려 천 번의 경배를 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런 곤욕이 무슨 소용이리 때가 되면 목숨을 걸고 모천으로 기어오르는 연어들처럼 남자들도 그들이 태어났던 모천의 성지를 찾아 때가 되면 밤마다 깃발을 세우고 순교를 꿈꾼다 그러나, 여자들이여 상상해 보라 참배객이 끊긴, 닫힌 신전의 문은 얼마나 적막하던가! 그 깊고도 오묘한 문을 여는 신비의 열쇠를 남자들이 지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보라 그 소중한 열..

치마

치마 / 문정희 벌써 남자들은 그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기는 하다 가만 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 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의 비밀이 궁금하여 남자들은 평생 신전 주위를 맴도는 관광객이다 굳이 아니라면 신의 후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꾸 족보를 확인하고 후계자를 만들려고 애쓴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다 여자들이 감춘 바다가 있을지도 모른다 참혹하게 아름다운 갯벌이 있고 꿈꾸는 조개들이 살고 있는 바다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죽는 허무한 동굴? 놀라운 것은 그 힘은 벗었을 때 더욱 눈부시다는 것이다

정희성 시 모음

새우젓 사러 광천에 가서 / 정희성 주일날 새우젓 사러 광천에 갔다가 미사 끝나고 신부님한테 인사를 하니 신부님이 먼저 알고, 예까지 젓 사러 왔냐고 우리 성당 자매님들 젓 좀 팔아주라고 우리가 기뻐 대답하기를, 그러마고 어느 자매님 젓이 제일 맛있냐고 신부님이 뒤통수를 긁으며 글쎄 내가 자매님들 젓을 다 먹어봤겠느냐고 우리가 공연히 얼굴을 붉히며 그도 그렇겠노라고 저문 강에 삽을 씻고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 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 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

정말 / 이 정 록

♤ 정말 / 이 정 록 "참 빨랐지! 그 양반!" 신랑이라고 거드는 게 아녀 그 양반 빠른 거야 근동 사람들이 다 알았지 면내에서 오토바이도 그중 먼저 샀고 달리기를 잘해서 군수한테 송아지도 탔으니까 죽는 거까지 남보다 앞선 게 섭섭하지만 어쩔 거여 박복한 팔자 탓이지 읍내 양지다방에서 맞선 보던 날 나는 사카린도 안 넣었는데 그 뜨건 커피를 단숨에 털어 넣더라니까 그러더니 오토바이에 시동부터 걸더라고 번갯불에 도롱이 말릴 양반이었지 겨우 이름 석자 물어 본 게 단데 말이여 그래서 저 남자가 날 퇴짜 놓는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어서 타라는 거여 망설이고 있으니까 번쩍 안아서 태우더라고 뱃살이며 가슴이 출렁출렁하데 처녀적에도 내가 좀 푸짐했거든 월산 뒷덜미로 몰고 가더니 밀밭에다 오토바이를 팽개치더라고 자갈..

歸 去 來 辭/陶淵明

歸 去 來 辭/陶淵明 歸去來兮 田園將蕪胡不歸 (귀거래혜 전원장무호불귀) 旣自以心爲形役 奚惆悵而獨悲 (기자이심위형역 해추창이독비) 悟已往之不諫 知來者之可追 (오이왕지불간 지래자지가추) 實迷塗基未遠 覺今是而昨非 (실미도기미원 각금시이작비) 舟搖搖以輕 風飄飄而吹衣 (주요요이경 풍표표이취의) 問征夫以前路 恨晨光之熹微 (문정부이전로 한신광지희미) 乃瞻衡宇 載欣在奔 (내첨형우 재흔재분) 童僕歡迎 稚子候門 (동복환영 치자후문) 三徑就荒 松菊猶存 (삼경취황 송국유존) 携幼入室 有酒盈樽 (휴유입실 유주영준) 引壺觴以自酌 眄庭柯以怡顔 (인호상이자작 면정가이이안) 倚南窓以寄傲 審容膝之易安 (의남창이기오 심용슬지이안) 園日涉以成趣 門雖設而常關 (원일섭이성취 문수설이상관) 策扶老以流憩 時矯首而游觀 (책부노이류게 시교수이유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