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집 *생선비늘*/2부 일의 의미 9

마스크 시대

마스크 시대 온통 얼굴을 가린 사람들뿐이다. 어른들은 물론 엄마 등에 업힌 어린아이들까지도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게 요즈음 세태다. 아니 전 세계 사람들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닌다. 우리 인류가 이렇듯 한뜻으로 통일되었던 시대가 또 있었으랴. 작년, 그러니까 2020년 새해 벽두에 불길한 소식이 전해졌다. 예방약도 치료할 약도 없는 코로나바이러스는 폐렴을 일으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질병이라 했다. 처음에는 중국 우한지역에서 발생했기에 그 이름을 ‘우한 폐렴’이라 불렀다. 그 후 ‘코로나 19’가 공식 명칭이 되었다. 짧은 시간에 코로나는 세계를 뒤덮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1월 중순에 첫 확진자가 발생했고 세계 보건기구는 3월 중순에 팬데믹을 선포했다. 우리나라의 첫 확진자는..

국선도

국선도 국선도는 아주 오래전부터 경천사상(敬天思想)에서 전래한 우리 민족 고유의 선(仙) 수련이다. 국선도의 주 수련은 호흡 수련이다. 그래서 그 명칭을 단전호흡이라고도 한다. 호흡은 생명 유지를 위하여 잠시도 멈출 수 없는 신체 대사 작용이다. 어떻게 호흡하느냐는 건강 유지에 있어 아주 중요하다. 호흡의 깊이에 따라 가슴호흡, 복식호흡, 단전호흡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얕은 가슴호흡은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 그런데 국선도가 있었다는 고증은 여러 곳에서 발견되지만, 국선도 내용을 알 수 있는 어떤 문서가 발견되지 않는 게 매우 아쉽다. 삼국사기에 있는 최치원의 난랑비서문(鸞郞碑序文)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이 나라에 현묘지도가 있으니 가로되 풍류라, 실로 이 도(道)는 삼 교(공자, 노자, 석가)를..

나의 건강법

나의 건강법 건강관리는 의식주만큼이나 중요하다. 저마다 자기만의 건강관리 법이 따로 있을 것이다. 운동이 건강관리 전부는 아니겠지만 건강관리의 중요한 한 부분임은 분명하다 하겠다. 그렇다고 어느 한 가지를 딱 집어 좋거나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본인이 즐겁게 할 수 있으면 좋은 운동이라 생각한다. 무리하게 하지 말고 몸에 맞게 적당히 하면 되지 싶다. 어떤 운동이든가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건강관리법을 소개하려 한다. 나는 국선도를 수련하고 있다. 한때 지도자 생활까지 했으니 국선도는 나와 맞는 운동이 아니겠는가. 국선도는 단전호흡이다. 기체조라고도 한다. 기체조는 기혈유통순환을 위한 체조다. 국선도는 그 움직임의 양태가 다양하다. 서서, 앉아서, 그리고 누워서 하기..

나이 탓이 아니다.

나이 탓이 아니다. 지하철 경로석이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사람이 주머니를 이리저리 뒤지며 무엇인가 찾느라 분주하다. 한참을 찾던 노인은 머리를 툭툭 치며 ‘이놈의 건망증.’ 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리더니 옆 사람에게 휴대폰을 한 번만 쓸 수 있겠느냐고 고개를 주억거린다. 나도 그랬다. 며칠 전, 모임이 있어 나갔다가 소주를 한잔하고 들어온 다음 날 아침이었다. 나가려고 옷을 입는데 뒤통수를 맞은 듯 머리가 번쩍했다. 잠겨있어야 할 주머니의 지퍼가 열려있고 주머니에 있어야 할 지갑이 보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허둥대며 지갑이 있을 만한 곳을 다 찾아보았지만, 지갑은 보이지 않았다. 심하게 술에 취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어쩐 일인지 기억이 전혀 없었다. 차근차근 지갑을 가지고 나간 시점부터 기억을 되새겨보았다. 그..

내 삶의 퍼펙트

내 삶의 퍼펙트 퍼펙트(perfect)란 말을 처음 들은 건 젊었을 때 볼링장에서였다. 한 게임을 스트라이크로 시작해서 스트라이크로 마감하여 300점 만점을 받는 것이다. 언젠가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여자 양궁선수가 과녁의 정중앙을 맞히어 중계방송용 카메라 렌즈를 깨뜨렸다. 그때 중계석에서는 퍼펙트 골드를 외쳤다. 퍼펙트는 그렇듯 완벽함에만 있는 것일까. 나는 한때 주차관리 일을 했었다. 내 나이 이미 노년에 이르렀지만 100세 시대에 대처하기 위해 조금 더 일이 필요했다. 주차관리 일은 책상에 앉아 사무 보는 일이 아니요, 기계를 돌려 생산을 하는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구멍가게에서 물건을 팔고 돈을 받는 일도 아니다. 차를 잠시 보관해주고 그 대가를 받는 서비스업이다. 또한, 주차장 일은 젊은이들이 양..

겨울나무에 날아든 새

겨울나무에 날아든 새 주차장 부스에 앉아 밖을 내다보면 큼직한 노거수 한 그루가 서 있다. 태양이 높이 솟아오르자 겨울 햇살이 나뭇가지에 내려앉는다. 볕 좋은 겨울나무에 새들이 날아든다. 잎 떨어져 앙상한 겨울나무에 날아든 새들의 종알거림으로 나무가 흥청거린다. 나는 멍하니 잎조차 떨어져 아무것도 없는 겨울나무를 찾은 새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하루가 심심해서 놀러 나온 걸까. 아니면 집에 배곯는 새끼가 있어 먹이를 구하러 나온 것일까. 새들의 일터는 나무가 아니라 나무 밑 아스팔트다.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새들의 눈에는 보이기라도 하나 보다. 차디찬 아스팔트를 맨발로 종종거리며 바닥을 쪼아댄다. 단단한 바닥을 쉴 새 없이 쪼아대는 연약한 부리가 애처로워 마음이 쓰인다. 이놈들도 나처럼..

막노동

막노동 나는 공기업에서 근무하다가 명예퇴직을 했다. 그렇다고 퇴직금으로 노후대책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무슨 일이라도 해야 했다. 설마 할 일이 없겠나 싶었지만 정말로 할 일이 많지 않았다. 기 수련원을 개원했다. 내가 건강관리 차원에서 수련하던 것을 이제 지도자급이 되었기에 수련원을 개원할 자격이 주어졌다. 적성에 맞는 일을 직업으로 하니 돈도 벌고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큰 수입은 아니더라도 즐기며 그럭저럭 십여 년을 운영해왔다. 노력이 부족했던지 경기가 좋지 않아서인지 활짝 펴보지 못하고 끝내 수련원도 불경기의 늪에 빠졌다. 시나브로 무논 마르듯 말라가는 모습을 안타까워하며 손을 털어야 했다. 어느새 나이가 걸림돌이 되었다. 그래도 수입이 있어야 하기에 일을 멈출 수는 없었다. 어떤 일이라도 해야 ..

노동조합 설립 참가기

노동조합 설립 참가기 2월 중순 이른 아침의 동대구역 맞이방이다. 아직은 얕은 추위가 겨드랑이 속으로 파고드는 쌀쌀한 날씨였다. 모인 인원은 모두 여섯 명이다. 칠백여 명이 되는 직원에 비하면 적은 인원이지만 약속한 인원은 다 참석했다. 매일 보던 얼굴이건만 이들의 건조한 대화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어떤 이는 연신 시계를 들여다보다가 열차표를 들여다보기도 하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기도 했다. 이따금 문 쪽을 바라다보며 힐끗거리기도 했다. 비장감마저 감도는 얼굴을 보면 무슨 비밀 결사라도 하는 사람들 같아 보였다. 드디어 개찰이 시작되었다. 지금껏 아무 일 없었음에 다행이다 싶은 마음으로 도망치듯 개찰구를 빠져나갔다. 나도 이들과 함께 대전 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지난 연말에 집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일의 의미

일의 의미 IMF 한파는 나라를 온통 구조조정의 물결에 휘말리게 했다. 나는 그때 남들이 부러워하는 공기업에 다녔었다. 공기업에도 구조조정의 파도는 높았고, 나는 그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명예퇴직을 했다. 나는 그때 일이 없어진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일이 없다는 것은 곧 삶이 급전직하한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조그만 일을 시작했다. 어둑새벽의 문을 내가 여는 듯 눈 비비며 나갔다. 그러나 새벽은 이미 열려있었다. 여기저기서 어둠을 걷어 내며 서성이는 노인들이 보였다. 남자들은 자전거를, 여자들은 유모차를 밀고 다니며 어둠 속에서 주섬주섬 종이 상자를 찾고 있었다. 혹한의 겨울에도 이들은 직업인 양 같은 일을 했다. 허리 구부린 채 밭은기침을 땅바닥으로 쏟아내며 허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