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집 *생선비늘*/1부 생선비늘 9

매호천의 봄

매호천의 봄 배산임수라 했던가. 매호천은 우리 동네가 품고 있는 젖줄 같은 하천이다. 이 하천은 내가 처음 이곳에 이사 왔을 때만 해도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살아있는 하천이었다. 비라도 한바탕 내린 후에는 피라미, 붕어, 미꾸라지 같은 물고기들이 꼬리를 흔들며 놀았다. 물고기를 본 아이들은 신기한 무엇이라도 본 듯 즐거워했다. 동네는 점점 커졌고 고층 아파트들이 우후죽순 늘어났다. 도시의 발전은 역기능도 있다. 새로운 건물들이 샘솟는 물줄기를 막아버렸는가 보다. 어느새 비가 와야만 물이 흐르는 사막의 와디처럼 건천이 되어버렸다. 물이 흐르지 않는 하천은 낡은 건물을 보는 듯 삭막했다. 무너져 내리는 강둑엔 잡초마저도 견딜 수 없었다. 그랬던 하천이 탈바꿈했다. 몇 년 전에 정부의 ‘고향의 강’ 사업에 선..

동아줄

동아줄 동서가 등산하러 가자고 이끌었다. 겨울의 끝자락인데 눈 덮인 산을 한 번이라도 밟아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명분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냉랭한 우리 집 분위기를 반전시켜주려는 속 깊은 배려임을 어찌 모르랴. 나는 다니던 회사를 명예퇴직하고 다른 일을 시작했다. 직업은 내가 좋아서 하는 취미가 아니고 돈을 벌어야 하는 생존이 걸린 문제이다. 그런데 나는 여유 있는 자의 소일거리같이 마음 수련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돈이 안 되는 일을 즐기듯이 말이다. 나를 보고 한심한 사람이라고 한숨지을 아내를 생각하면서도, 내 능력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고 고집스레 붙들고 있었다. 가뭄에 무논 마르듯 가정이 서서히 메마르기 시작했다. 가정을 묶어주던 화목도 서서히 풀어져 가고 있었다. 아내는 인내에 한계를 느낀..

가족

가족 세상이 왜 이럴까. 요즈음 뉴스에는 부모가 자식을 죽였다는 사건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젊은 엄마가 자기 아이를, 이모가 조카를 죽였다. 외할머니가 제가 난 아이를 딸이 난 아이와 바꿔치기하고 끝내는 그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한다. 짐승이 제가 낳은 새끼가 사람의 손을 타면 제 새끼를 죽인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어찌 인간이 제 새끼를 죽인단 말인가. 남자들이 평생 가도 군대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듯, 팔순의 큰 누나는 나만 만나면 피난길에 겪었던 일을 전설처럼 이야기하며 밤을 지새우곤 했다. 열여섯의 꽃다운 나이에 겪은 전쟁의 참화는 기억하기조차 끔찍한 일이기에 가슴에 맺힌 아픔도 컸으리라. 나는 어렸기에 기억나는 순간이 하나도 없다. 그렇지만 누나에게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기에 그..

불효부모 사후회(不孝父母 死後悔)

불효부모 사후회(不孝父母 死後悔) 어버이날이 다가온다. 아들이 어버이날 선물이라며 현금 봉투를 건넨다. 자식이 준 봉투 속에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있다. 그때도 어버이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고향에 계신 어머니에게 용돈이라도 얼마 챙겨 보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나는 고향을 떠나 어머니와 멀리 떨어져 살고 있고, 어머니는 고향에서 형님과 함께 살고 계셨다. 나는 둘째 아들이란 핑계로 어머니 부양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명절이나 되면 한 번씩 올라가고, 이따금 용돈을 조금 보내드리는 것으로 자식의 도리를 다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이 왔다. 팔순 어머니의 위독하다는 소식은 나의 마음을 조급하게 했다. 마음만 바빠 허둥댔지 밤늦게 출발하는 야간..

책가방의 추억

책가방의 추억 초등학교 앞이다. 아이들이 삼삼오오 교문으로 들어간다. 그 모습이 귀여워 한참을 눈여겨본다. 하나같이 가방을 등산 배낭이라도 멘 듯 등 뒤로 메고 다닌다. 아이들의 가방은 개성이라도 나타내려는 듯 저마다 색다르다. 저학년 아이들의 가방은 가벼운 색깔로 앙증맞게 예쁘다. 고학년의 책가방은 좀 어두운 색깔이지만 듬직해 보인다.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아이들을 보니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 들고 다녔던 책가방이 생각난다. 나는 시골에 살다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도시 학교로 전학했다. 도시 학교로 전학은 했지만, 촌티를 벗지 못한 상태로 학교에 다녔다. 도시 학생들은 대개가 손으로 들고 다니는 책가방을 가지고 다녔다. 그런데 나는 그런 책가방이 없었다. 시골아이처럼 보자기에 책을 싸서 다녔다. 시골..

플라타너스

플라타너스 늦가을 바람이 스산하다. 길가의 플라타너스 마른 잎이 사각거린다. 코끼리 귀 같은 넓은 잎으로 훠이 훠이 무덥던 여름 더위를 쫓던 잎이었다. 어느덧 풍성하던 잎 하나둘 떨어뜨리며 다가올 매서운 계절에 몸 움츠리고 있다. 고개를 들어 나무를 올려다본다. 나뭇가지에는 머리숱이 빠져 듬성듬성한 내 머릿결처럼 얼마 남지 않은 나뭇잎들이 애처롭다. 그래도 고택의 기둥 같은 마들가리가 중후하고 듬직하다. 그런데 매끄럽게 뻗은 아랫부분과 달리 마들가리 윗부분이 이상하다. 깨끗이 낫지 않은 상처처럼 여기저기 울퉁불퉁한 곳이 눈에 띈다. 가만히 살펴보니 그것은 가지 잘린 부분의 그루터기다. 플라타너스는 남에게 상처를 내보이고 싶지 않은가보다. 가지 잘린 상처를 진액을 내어 감싸 안는다. 어떤 곳은 표피로 완전..

만년송(萬年松)

만년송(萬年松) 노란 산수유꽃 햇살에 반짝이는 이른 봄날, 은해사 뒤쪽으로 산길을 오르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 바른길을 찾기 위해 우거진 숲을 헤치느라 삭정이 가지에 얼굴을 긁히며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능선에 올라설 수 있었다. 구불구불 산길을 걷자니 우뚝우뚝 예사롭지 않은 바위 군락이 나타났다. 치솟아 벼랑을 만든 바위가 있는가 하면, 옆으로 비스듬하게 서 있는 바위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깜냥대로 자리하고 있었다. 조심스레 바위를 타고 올라갔다. 군데군데 널려있는 너럭바위가 어느 대가(大家)의 안마당처럼 넓게 펼쳐졌다. 어느 세월 계곡이었던 곳이 위로 솟아올라 산이 되었는지, 바위들은 계곡에서 흐르는 물에 숱한 세월 제 몸을 씻은 듯 정갈했다. 아니면 북풍한설 맞으며 인고의 긴 세월을 탁마라도 했던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그때 나는 마음 수련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햇살 좋은 봄이 되면 건강을 챙기기 위해 운동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늘기 마련인데 지난겨울이 너무 추웠던 탓일까, 줄어든 회원 숫자가 회복되지 않고 썰렁한 분위기가 오래갔다. 수련장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마음도 일그러졌다. 바르고 편안한 마음을 유지하며, 살갑게 회원들의 비위도 맞추고 흥미를 잃지 않도록 잘 다독여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수련생의 소소한 실수에도 편치 않은 속내를 드러내 버리곤 했다. 수련을 끝낸 회원이 자기 앞에 놓여있는 전열기를 끄지 않았다고 눈살을 찌푸렸다. 속에서 끓고 있는 불쾌한 감정을 정제하지 못하고 얼굴에 표출하는 일이 많았다. 봄이 되어도 녹지 않는 응달 속의 얼음덩이가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듯했다. 수련..

생선 비늘

생선 비늘 현관을 들어서는 아내의 치마에 이물질이 반짝인다. 다가가 떼어내니 생선 비늘이다. 나는 언뜻 버리지 못하고 장난감인 듯 만지작거린다. 아내는 그런 나를 의아한 눈초리로 쳐다본다. 하지만 숙연해지는 내 마음을 어찌 알까. 내 가슴속엔 좀체 떨어지지 않는 생선비늘 하나 있다. 우리 가족은 한국전쟁 때 피난 내려왔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곳에서의 삶은 마른 풀조차 없는 황야에 서성이는 초식동물의 삶이었다. 우리에게 재산이라곤 새 둥지의 새끼들처럼 입들만 벙긋거리는 자식들만이 전부였다. 암수가 번갈아 먹이를 나르는 어미 새같이 어머니는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어머니는 생선 장사를 시작했다. 어머니는 새벽 4시에 울리는 통행금지 해제 사이렌 소리에 맞추어 여명도 없는 어둑새벽에 선창으로 나가곤 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