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 설립 참가기
2월 중순 이른 아침의 동대구역 맞이방이다. 아직은 얕은 추위가 겨드랑이 속으로 파고드는 쌀쌀한 날씨였다. 모인 인원은 모두 여섯 명이다. 칠백여 명이 되는 직원에 비하면 적은 인원이지만 약속한 인원은 다 참석했다.
매일 보던 얼굴이건만 이들의 건조한 대화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어떤 이는 연신 시계를 들여다보다가 열차표를 들여다보기도 하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기도 했다. 이따금 문 쪽을 바라다보며 힐끗거리기도 했다. 비장감마저 감도는 얼굴을 보면 무슨 비밀 결사라도 하는 사람들 같아 보였다. 드디어 개찰이 시작되었다. 지금껏 아무 일 없었음에 다행이다 싶은 마음으로 도망치듯 개찰구를 빠져나갔다. 나도 이들과 함께 대전 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지난 연말에 집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받아보니 낯선 남자의 목소리였다. 대전에 근무하는 직원이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대뜸 나를 잘 알고 있다고 했다. 나를 안다는 말에 잠시 어리둥절하여 고개를 갸웃하는데, 그는 서론 없이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우리 회사에도 노동조합을 결성한다고 했다. 준비는 거의 완료되었다며 경산의 참여를 기다리기로 했다고 한다. 한 달 정도 여유가 있으니 그동안에 경산에서 참가 인원을 모아보라는 것이었다. 우리 회사는 내가 근무하는 경산에 있고, 대전 지역에 있었다. 경산이 빠진 상태에서도 조합 설립은 가능하지만, 조합원이 제일 많은 경산이 빠지면 명분이 좀 약해지지 않겠느냐는 말이었다. 몇 명만이라도 참여하여 구색을 갖추자는 것이었다. 그 뜻이 이해되어 나는 쉽게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가 일면식도 없는 나를 콕 집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일 년 전 경산에서는 6급 사태라고 이름 지어진 사건이 있었다. 본래 회사 규정은 정식 직원으로 입사를 하면 6급이다. 6급에서 일정 기간이 지나면 5급으로 자동 승진한다. 5급은 계장급으로 우선 월급이 껑충 뛴다. 5급으로 승진이 되면 떡을 돌리는 관례가 있을 만큼 기다리던 희망이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이렇다 할 설명도 없이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 인사제도를 바꾸어 일정 수만 선별하여 진급시킨다고 했다. 진급 날짜가 다 되어가는 당사자들에겐 뼈아픈 소식이었다. 6급 직원들이 반대 농성을 시작했다. 점심시간에 운동장에 모여 회사의 부당함을 주장했다. 6급 직원들만의 단체 행동이라 규모가 크지는 않았다. 그래도 처음 일어난 일이라 조용한 회사가 시끌시끌했다. 그들의 단체 행동은 찻잔 속의 파문으로 끝났다. 하지만 보수성이 강한 우리 회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결국 주동자들은 처벌을 면치 못할 거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들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선배들을 찾았다. 나는 그 전에 노사협의회 위원을 지낸 적이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도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당장 도와줄 방법은 없었다. 나는 노동조합 결성만이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내가 노동조합 결성에 앞장서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건 치기였다. 나는 아무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고 마음뿐이었다. 나의 의견에 동조는 했지만 따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주장만 하다가 6급 사태는 끝이 났다. 6급 사태는 주동자 두 명을 부여로 징계 발령 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대전의 조합 설립 준비자들은 경산 소식을 그들에게 들었고, 내 이름은 거기서 나왔던 것이다.
알겠다고 대답은 시원하게 했지만, 막상 일은 진척되지 않았다. 대전에서 어느 정도 진척이 되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으니 어느 정도 범위에서 행동해야 하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자칫 잘못하여 발각이라도 되면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는 것은 아닌지 불안했다. 그때 경산에는 간부들이 심어놓은 세작들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6급 사태 이후 불안을 느낀 간부들이 비밀리에 심복 부하를 심어놓았고, 그들은 직원들의 동태를 파악하여 보고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래서 경산의 현장 분위기는 얼음장 같았다. 누구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조심스러웠다. 발각되면 회사를 그만두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도 났다. 나는 자신 있게 대답한 것을 후회했다. 내가 맡은 일은 전혀 진척이 없었다. 아니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거의 포기 상태로 있었다. 드디어 모임 날짜가 정해졌다고 다시 연락이 왔다. 사람 가리지 말고 친구라도 좋으니 단 몇 명만이라도 데리고 오라는 애절한 당부였다. 하지만 내 생각은 그게 아니었다. 만약 발각되면 나는 당연히 회사를 그만두게 되고, 나 때문에 친구가 곤욕을 치르게 될 것이란 생각에 쉽게 선택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서로 친분을 통해 여섯 명만이 모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정의감과 희생정신이 없었다면 어찌 위험한 일에 뛰어들었겠는가. 대전 가기 하루 전날에는 이 사람 저 사람 많은 사람에게 사실을 알리고 동참을 부탁했다. 그러나 역시 추가 참가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대전의 모임 장소로 갔다. 모임의 분위기는 비밀결사의 모임이 아니었다. 많은 직원이 모인 축제 분위기였다. 분위기를 모른 채 긴장했었던 게 부끄러워 얼굴이 달아올랐다. 설명을 듣고 나니 이미 결성은 완료되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노동조합 설립이 신고제로 바뀌었기에 서류에 하자만 없으면 이삼일 안에 신고증이 나올 테니 어떤 압력이 들어와도 굴하지 말라고 일러주었다. 설명을 듣고 여러 사람을 만나고 나니 마음이 푸근해졌다.
저녁 어스름에 대구에 도착했다. 바로 조합원 모집에 들어갔다. 저녁에 어느 정도 조합원 확보를 해야 아침에 출근하여 힘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한적한 다방에 들어가 전화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참석하는 직원들이 의외로 많았다. 다음날 출근했다. 역시 간부들은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난리가 난 것처럼 호들갑이었다. 노동조합 설립을 빨리 취소하지 않으면 파면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미 그 정도의 압박은 각오했기에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세차게 흐르는 강물 같은 우리의 행로를 방해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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