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에 날아든 새
주차장 부스에 앉아 밖을 내다보면 큼직한 노거수 한 그루가 서 있다. 태양이 높이 솟아오르자 겨울 햇살이 나뭇가지에 내려앉는다. 볕 좋은 겨울나무에 새들이 날아든다. 잎 떨어져 앙상한 겨울나무에 날아든 새들의 종알거림으로 나무가 흥청거린다. 나는 멍하니 잎조차 떨어져 아무것도 없는 겨울나무를 찾은 새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하루가 심심해서 놀러 나온 걸까. 아니면 집에 배곯는 새끼가 있어 먹이를 구하러 나온 것일까.
새들의 일터는 나무가 아니라 나무 밑 아스팔트다.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새들의 눈에는 보이기라도 하나 보다. 차디찬 아스팔트를 맨발로 종종거리며 바닥을 쪼아댄다. 단단한 바닥을 쉴 새 없이 쪼아대는 연약한 부리가 애처로워 마음이 쓰인다.
이놈들도 나처럼 살아온 과거를 후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곡백과 익어가는 풍요로운 가을에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다가 이 강철 같은 한파에 먹이를 구하러 다니고 있을까. 추위가 오기 전에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다 창고에 쌓아 놓았다면 찬바람 헤치며 먹이를 구하러 다니지 않아도 될 것을. 차 사이를 쌩쌩 날아다니는 날렵한 도시 새들이건만 어찌 거무튀튀한 모습이 어쭙잖다. 어떤 때는 도시 빈민인 듯 초라해 보이기도 한다. 몇 마리씩 떼 지어 다니던 새들은 다 보금자리 찾아가고 어느덧 하루해가 저문다. 새들이 떠난 앙상한 나뭇가지에 겨울바람이 쓸쓸하다. 떨어지는 태양이 희미한 노을을 뿌릴 때 이름을 알 수 없는 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다른 새들은 무리를 지어 다니는데 이놈은 혼자 왔다. 남은 먹이가 있기는 한 것인가. 다른 새들이 지나간 자리를 또 쉼 없이 쪼아댄다. 새들을 보고 있으려니 아침에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일요일은 내가 혼자 근무하는 날이다. 그러나 번잡한 새벽 시간에는 추가로 작업자가 투입된다. 그래서 내가 출근하기 전에 근처에 사는 두 사람이 먼저 출근하여 근무를 시작했다. 내가 출근하고부터는 근무자가 모두 세 명이 된다. 일요일 아침의 주차업무는 마치 첫새벽에 잠깐 열리는 도깨비시장 같다. 골프 치러 가는 사람, 등산하러 가는 사람들이 여명도 열리기 전에 한꺼번에 몰려들기 때문이다. 쉴 여유도 없이 주차장은 차 한 대도 더 들어올 수 없을 만큼 꽉 들어찬다. 그다음부터는 차가 더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게 나의 업무이다.
일에 쫓길 때는 추위도 잊어버린다. 일이 끝나고 나니 손발이 시려 온다. 손바닥을 비비고 발을 동동 구른다. 이럴 때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이 가슴을 데워준다. 종이컵에서 전해지는 온기를 나누며 서로의 고생을 격려한다.
제일 연장자는 손 영감이다. 입김을 호호 날리며 바쁘게 움직이는 손 영감의 모습은 젊은이 못지않다. 털모자를 눌러 쓰고 두툼한 목도리를 둘렀지만, 둔한 몸을 뒤뚱거리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몸놀림이 당차다. 차들이 쉼 없이 들어오기에 정신없이 허둥댔지만, 일이 끝난 후의 모습은 개선장군처럼 의연한 모습이다. 손 영감은 조그만 사업을 하며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고 했다. 잘 나가던 동생의 사업이 부도나는 바람에 덩달아 주저앉았단다. 보증해준 게 탈이었다. 아무리 일자리를 찾아봐도 나이가 걸림돌이라 전전긍긍하다가 이곳에 왔다며, 그래도 일할 수 있다는 게 어디냐고 너스레를 떨며 분위기를 북돋는다.
또 한 사람은 주임이란 직책을 가지고 있다. 평일에 이곳에서 정상 근무하는 이 사람은 이곳 근무 전반을 관장한다. 그는 지하철을 공짜로 타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가장 젊은 사람이다. 무료 교통카드를 내보이며 나이 자랑도 서슴지 않는다. 그는 예전에 식당을 운영했기에 이따금 그때의 고객을 만나기도 한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사장이라 부르며 아는 체를 한다. 그럴 때면 멋쩍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는 순진한 사람이다. 식당 일을 접고 바로 주차관리 업무에 뛰어들어 경력이 십 년이 넘었다며 주차관리의 베테랑이라고 자부심도 대단하다.
나도 젊은 날엔 공기업이 일터였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고 출근하는 곳이 있어 행복한 가장이었다.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바다에도 가고 친구들과 어울려 등산하러 다니며 소시민의 행복을 만끽했다. 그러던 중 나라에 외환위기가 닥쳤다. 그때 회사를 명예퇴직 했다. 하지만 실업자가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곳에서 새 일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능력도 없고 자금도 미천한 내가 사업을 꿈꿀 수도 없는 노릇이요, 그렇다고 변변한 자격증 하나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 구청에서 운영하는 시니어클럽에서 주차장 근무를 소개받았다. 회사 생활만 하던 사람이 여러 사람을 상대로 돈을 주고받는 일에 적응할 수 있을까 우려도 있었다. 처음 시작한 주차관리 업무는 낯설었다. 돈을 주고받는 일이기에 고객들은 늘 민감하게 반응했다. 나갈 때 주겠노라 약속해놓고 퇴근 시각이 넘을 때까지 오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한눈파는 사이에 몰래 들어가려는 사람도 있었다. 소소한 일로 티격태격하는 건 차라리 일상이었다. 잘잘못을 다투려면 온종일 싸움을 해야 한다. 삶의 터득일까, 웬만한 일은 그냥 웃어넘기는 여유도 생겼다. 오히려 참는 편이 마음을 더 편하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태양은 겨울나무 가지 사이로 몸을 숨긴다. 나는 오늘 차디찬 아스팔트 위에 부리를 쪼아대는 겨울새에서 삶의 투지를 보았다. 거무튀튀한 날개를 퍼덕일 때 속에 숨겨져 있던 하얀 희망도 보았다. 내일도 겨울나무에는 새들이 날아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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