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집 *생선비늘*/5부 팔공산

용호상박길

취송(翠松) 2022. 3. 18. 08:36

용호상박길

왕건 8길 중 첫 번째 길은 용호상박길이다. 신숭겸 유적지에서 열재까지 약 4.3 .

고려 태조 왕건의 이름을 붙인 길을 왜 신숭겸 유적지에서 시작할까. 신숭겸 유적지에 들어선다. 아침 햇살 가득한 뜰 안이 고요하다. 홍살문 너머에는 왕건을 위해 목숨 바친 신숭겸의 넋이 배어있는 순절단이 보인다. 당시의 처절했던 상황을 회상해 보니 마음이 어지럽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천년 사직을 이어왔다. 천년은 너무 긴 세월이었나, 신라는 서서히 그 힘을 잃어갔다. 옛 백제 땅에는 견훤이 그 세를 떨치고 북쪽 땅에는 고려의 왕건이 있었다. 북쪽 땅 고려는 처음에는 궁예가 일으킨 태봉이었다. 후에 신숭겸과 김락이 홍유, 배현경, 복지겸과 함께 혁명을 일으켜 폭군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대해 고려를 건국하였다. 신라는 이미 쪼그라든 마당만 있을 뿐, 제힘으로는 대문조차 잠글 수 없을 만큼 쇠약해졌다. 견훤과 왕건이 용호상박의 쟁투를 벌이는 상황이 신라 땅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후백제의 견훤은 신라를 공략하기 위해 나섰다. 다급해진 신라 경애왕은 고려에 도움을 요청했다. 왕건은 신라를 돕고자 출병했지만 이미 늦었다. 견훤은 신라를 공격하여 경애왕을 무참히 살해하고 갖은 만행과 약탈을 자행했다. 왕건은 대구의 공산 동수에서 경주에서 나오는 견훤을 맞아 싸울 태세를 갖추었다. 하지만 왕건의 계획을 이미 간파한 견훤은 역으로 왕건을 포위했다. 수세에 몰린 왕건 군은 지금의 파군재에서 궤멸당하고 급기야 왕건은 생명조차 보장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신숭겸은 왕건으로 위장하여 적진으로 뛰어들었고, 이 틈을 이용해 왕건은 탈출로를 확보했다. 신숭겸은 김락 장군과 함께 장렬히 전사하고 왕건은 겨우 탈출해 성공했다. 그 후 왕건은 신숭겸의 죽음을 애도하여 지묘사를 창건해 그들의 명복을 빌게 하였다.

태조 왕건은 팔관회에서 신숭겸과 김락을 추모하는 행사를 벌였는데, 그 자리에 두 공신이 없는 것을 애석하게 여겨 두 공신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복식을 갖춰 자리에 앉게 했다. 그랬더니 그 허수아비가 술도 받아 마시고 춤을 추었다고 한다. 그 후 예종 왕이 서경에서 팔관회를 열었을 때, 그 가면극을 보고 그들을 추모하기 위해 향가인 도이장가를 지었다.

임을 온전하옵게 하신 마음은 하늘 끝까지 미쳤는데 비록 넋은 갔어도 삼으신 벼슬만은 또 하는구나. 바라보니 알겠노라 그때의 두 공신이여 오래도록 곧은 자취 나타나 빛나도다.’

신숭겸이 죽은 지 200년이 지난 후에 예종이 이 작품을 지었다고 하니 왕건을 위한 신숭겸의 죽음이 고려사회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신숭겸의 위왕대사(爲王代死)의 충절이 배어있는 유적지를 둘러보니 가슴이 묵직하다. 유적지를 나와 조금 걸으니 탐방센터가 있다. 탐방센터에서 왕건길에 대한 설명을 듣고 탐방의 첫걸음을 뗀다. 신작로처럼 넓게 닦여진 길이 시원하다. 그 옛날 처절했던 전투 장면 대신 솔숲 우거진 산길은 마냥 평화롭기만 하다. 쭉쭉 뻗은 소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솔바람에 피톤치드가 물씬 묻어나오는 듯하다. 오른쪽 아래 햇살 받은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대곡지의 윤슬이 반짝인다. 대곡지를 지나 오르막길은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게 하지만 숲속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게 땀방울을 씻어간다. 조금 더 올라가노라면 바로 길옆에 아담한 기와집 한 채가 보인다. 원모재다.

원모재는 경주인 최인을 추모하는 후손들에 의해 세워졌다. 한천공 최인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공산의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혁혁한 공을 세웠다. 화원, 달성 등지에서 적을 무찌르고 방어사 곽재우와 합세, 화왕산성 전투에서 전공을 세웠다. 임란 후에는 이곳에 은둔하여 독서로 여생을 보내다가 이곳에서 영원히 잠들었다. 묻혀 있던 충절의 사적을 늦게나마 발견하여 이렇듯 기릴 수 있으니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임진왜란은 민초들이 목숨을 내놓고 싸운 전쟁이라 그런지 더 애틋하다. 다시 걸음을 재촉하다 보니 왕건 전망대가 나온다. 산을 올려다보는 곳이다. 오른쪽 끝으로는 가팔환초의 초례봉이 보인다. 그리고 왼쪽 끝으로는 팔공산의 주봉인 비로봉과 동봉, 서봉이 보인다. 시야는 꼭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것만은 아니다.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확 트인 시야를 보는 것도 또 다른 매력이 있다.

한창 여름이 익어가는 유월 말이라 산야의 녹음이 싱그럽다. 그 옛날 용호상박의 쟁투가 벌어졌던 그 처절했던 길을 지금 평화롭게 걷고 있다. 그때 싸움을 하던 우리 조상들은 당신의 후예들이 이렇듯 평화롭게 이 길을 걸을 것을 생각이나 했을까. 왕건 전망대를 지나 조금 걸으니 열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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