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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는 반딧불이

울지 않는 반딧불이 / 박일천(16회 평사리문학상 대상) 시골집 대문 안에 들어서자 텃밭에서 푸성귀를 솎아내던 시어머니께서 흙 묻은 손을 털고 일어서며 환한 얼굴로 우리를 맞이하신다. 가끔 다녀가는 자식들이 적적함을 밀어내는 말동무이리라. 이것저것 물어보며 세상 밖 이야기에 귀 기울이신다. 밭에서 솎은 어린 배추로 얼갈이김치를 담고 챙겨간 찬거리로 저녁밥을 지어 먹었다. 귀뚜라미 소리에 이끌려 그이와 함께 개울가로 나갔다. 동구 밖을 지나 갈대가 사운거리는 둑길을 따라 걸었다. 동산 너머로 열나흘 달이 얼굴을 내밀었다. 벼들이 그득 찬 들녘은 달빛에 젖어 희붐하다. 내 키보다 큰 갈대들은 냇둑 위에 그림자를 길게 늘이고 있다. 갈대밭 언저리로 작은 불빛 하나가 깜박거리다 사라진다. 잘못 보았을까. 내 눈..

구두

구두/ 조일희-2017년 토지문학 대상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사거리 중국집주차장에 웬 사내가 군드러져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를 두 손으로 받친 채 자고 있는 사내 옆으로 반쯤 남은 소주병이 파수꾼처럼 서있다. 아니꼬운 사내를 사람들이 힐끗 쳐다보며 지나간다. 무심히 지나치려는 나를 사내의 알근한 구두 한 짝이 빤히 쳐다보며 아는 체를 한다. ​ 어린 시절, 추운 겨울에도 양말을 신을 수 없을 만큼 가난했었다. 애옥한 형편에 새 신발이라야 고작 일 년에 한두 번, 명절빔으로 받은 검정 고무신이나 운동화가 전부였다. 강산이 두 번씩 바뀌어도 우리 집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다행히도 흐르는 시간은 촌스러운 나를 싸구려 구두를 신어도 아름다운 나이로 만들어 주었다. 그가 내민 화려한 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