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집 *생선비늘*/3부 구멍담

진골목

취송(翠松) 2022. 3. 19. 09:33

진골목

진골목은 긴 골목이란 뜻이다. 대구 중심가인 반월당 근처 종로에 현존하는 근대 골목이다. 종로는 지금의 번화가인 반월당과 동성로에 그 위상을 내어주기 전까지 대구의 중심지였다. 또한, 멀지 않은 곳에 경상감영이 있어 이 일대가 조선 시대에도 중심지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곳은 또 근대 초기 대구의 부호들인 달성 서씨들의 집성촌이었다. 예전부터 대구 부자들이 살던 동네라 큰 건물들이 들어섰기에 대구의 가장 번화가인 중앙로보다 집값이 훨씬 비쌌다고 한다. 지금도 여기저기 근대화될 때의 건물들이 현대 건물과 어우러져 유적처럼 남아있다.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이곳은 요즈음 기성세대와 젊은이들이 공유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처음 진골목이란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골목이 길기에 이름마저 긴 골목이라 했을까 궁금했다. 어느 날 반월당에서 종로로 걸어갈 일이 생겼다. 몇 걸음 걷다 보니 길가에 세워진 김원일 소설가의 초상이 그려진 커다란 장방형의 세움 간판이 눈에 띄었다. 김원일이 쓴 '마당 깊은 집' 의 배경이 이 골목이란다. 조금 더 걸으니 우측 편으로 길게 뻗어 들어가는 골목이 보였다.

골목으로 들어가니 순간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고샅이라도 들어선 듯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천천히 골목을 걸었다. 이곳은 국채보상운동을 벌인 독립운동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일제는 경제 수탈정책으로 국채를 발행했다. 그것은 우리 백성의 빚이 되었다. 이때 진골목에 살던 7명의 부인이 금붙이 등 패물을 모아 나라에 헌납하는 여성 국채보상운동을 벌였다.

골목은 예나 지금이나 서민들의 길인가보다. 조선 시대의 양반들이 거들먹거리며 신작로를 이용해 감영을 드나들 때, 일반 백성들은 그런 양반들의 꼴이 보기 싫어 골목길을 이용해 감영에 일을 보러 다녔다고 전해진다. 당시 진골목은 경상감영으로 통했다고 한다.

대문을 열어놓고 손님 들기를 기다리는 식당들이 한가롭다. 열려있는 옛날식 대문으로는 아주머니가 행주치마에 손을 쓱쓱 닦으며 마중이라도 나올 것만 같다. 어디선가 되비지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되비지, 되비지를 외치던 노파를 만날 것 같다. 내 어린 시절에 집 근처 골목에서는 노파가 무거운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되비지를 팔러 다녔다. 진골목이 너무 길었나, 소방도로가 지나면서 골목의 허리를 잘라버렸다. 잘린 골목의 부근에는 미도다방이란 간판이 보인다. 다방이 카페나 커피 전문점에 그 이름을 빼앗긴 지 이미 오래인데 다방이란 이름이 정겹다. 저 다방에 들어가면 한복 곱게 입은 마담과 양장을 한 예쁘고 젊은 아가씨가 반갑게 맞아주려나.

골목은 내 어린 시절의 삶이 녹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내가 대구에 뿌리내린 지 어언 반세기가 다 되어간다. 나는 대구에 오기 전에 대구와 비슷한 크기의 도시에 살았다. 그러니 고향의 골목도 그 생김새가 비슷했다. 차가 다니는 큰길엔 큰 건물들이 있었고, 서민들이 사는 작은 집들 사이로 다니는 길은 전부 골목이었다.

내가 살던 동네에도 차가 다니는 앞길을 제외하면 뒷동네는 작은 집들이 붙어있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 깨진 슬레이트 지붕에서는 슬레이트 조각들이 떨어져 우리를 놀라게 했고, 까만 콜타르를 입힌 루핑 지붕이 찢어져 날아다녔다. 각기 다르게 지어진 움막 같은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 듯한 골목 안 풍경이었다. 우범지역 같은 골목길이지만 그곳엔 친구가 있었고 형과 아우도 있었다. 중학생도 있었고 고등학생도 있었다.

바닷가를 가기 위해서는 또 다른 낯선 동네를 지나야 했다. 그곳은 피난민 정착촌이었다. 그곳의 골목은 자연스러운 긴 골목이 아니라 계획된 도시의 길처럼 곧게 뻗은 골목이었다. 골목 양쪽으로 지어진 집들은 무허가 판잣집이었다. 그래도 집들은 설계도에 의해 지어진 건물 모양 일정한 모양으로 지어졌다. 육면체의 건물들이 연결되어 일자로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아파트의 복도인지 동네 골목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좁은 골목이었다. 복도 같은 골목길을 지나가면 양옆으로 문이 있다. 그 문은 대문 겸 방문이다. 여름에 그곳을 지날 때는 문을 열어놓고 방안에 누워있는 사람들을 억지로 외면하며 지나가야 했다.

진골목은 빠르게 질러가기 위한 지름길이 아니라, 오히려 여유를 가지고 돌아가는 슬로 시티다. 시대가 발전하여 현대건물이 우후죽순 들어선 요즈음의 근대 골목이라니. 구도가 어긋난 그림을 보는 듯 신기하다. 그래도 골목에서 따라 나오는 공기가 옛 공기인 듯 시원하게 다가온다. 가슴이 확 트인다.

오래전에는 시골의 고샅 말고도 도시의 동네가 모두 골목으로 연결되었다. 골목은 삶 자체였다. 친구들이 골목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우리는 골목에서 놀며 자랐다. 있음과 없음을 가리지 않으며 온종일 함께한 친구들이었다. 골목은 나무줄기에서 뻗은 뿌리처럼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했고, 골목은 우리 몸의 실핏줄 모양 피 돌림을 해주는 역할도 담당했다.

과거는 언제나 현대화의 물결에 휩쓸린다. 세월 따라 이곳의 부자들이 떠나면서 저택들은 쪼개져 팔려나갔고, 동네는 쇠락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근대건물을 보존하여 근대화 거리로 되살리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우리 민족 고유의 한옥과 복고풍의 근대식 건물을 보존하여 근대 골목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현대식 큰길과 근대적 골목이 어우러져 서로 조화를 이룬 것이 마치 불편한 동거처럼 보이지만, 진골목은 현대식 고층빌딩으로 가득한 대구 도심에 옛날 골목길의 풍경과 근대식 건물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전국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또한 노년과 젊은이들이 함께하는 공간으로도 말이다. 진골목이 오래오래 보존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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