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집 *생선비늘*/4부 객기

성매매

취송(翠松) 2022. 3. 19. 09:36

성매매

내가 성매매 여성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학위 논문 때였다. 내가 쓰겠다고 제출한 논문 주제를 본 교수님은 자료 준비는 충분히 되었느냐고 물었다. 사실 준비가 많이 부족한 상태였고 쓰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지도교수는 성매매 여성에 대하여 써보지 않겠느냐고 제의했다. 논문 주제가 예사롭지 않아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한번 고민은 해보겠노라고 대답했다. 성매매라는 단어가 께름칙하기도 하고 내가 소화해낼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다. 당황하면서도 한편 호기심도 동했다. 그래서 한번 써보겠노라고 용기를 냈다. 지도교수는 성매매 여성들한테 받은 설문조사 자료를 나에게 넘겨주었다.

나는 현실적으로 성매매를 시대의 필요악으로 보아 성매매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려 했다. 그러나 교수님의 생각은 달랐다. 논문은 성매매 여성의 자립 갱생을 돕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니 성매매는 부정한 것이요, 사회악으로 정의해 타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성매매 여성의 실태를 파악하고 사회 복지적 측면에서 대책을 강구하기로 했다.

성매매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어떤 사회학자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성매매는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그 옛날 나이 어린 처녀를 제단에 바치던 종교의식에서 성매매의 기원을 찾는다. 우리나라는 성매매의 기원을 기녀에 두고 있는데, 이는 기녀를 남자의 노리개로써 창기와 대등한 개념으로 보아 생긴 것으로 추측된다. 기녀의 기원에 대하여는 신라 화랑의 전신인 원화(源花)가 그 시발점이라고도 하고, 또 고려의 양수척(고려 시대 천민계급의 집단)에 두기도 하지만 확실한 사료는 없다.

우리나라의 현대식 성매매는 일제강점기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일본엔 일찍이 유곽(遊廓)이라 해서 공창제도가 있었다. 일제는 우리나라에 진출하자마자 부산, 인천, 서울 등에 유곽을 세워 우리나라에 공창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우리 국민의 정서를 퇴폐화시키기 위한 수단이며 위안부 차출을 위한 기도이기도 했다. 해방되자 미 군정은 공창제도를 폐지했으나 한번 뿌리 내린 성매매 행위를 근절시키기는 쉽지 않았다. 서서히 사창인 집창촌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전쟁은 여인들이 몸을 팔아서라도 먹고 살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으로 몰아간다. 해방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일어난 한국전쟁은 성매매를 더욱 활성화했다.

정부는 성매매를 근절하기 위해 1960년대 초에 윤락행위 등 방지법을 제정, 공포했다. 하지만 도시 곳곳에 있는 집창촌은 그대로 존속했다. 법으로는 금지하고 행정기관은 관리하는 구조였다. 그 때문에 성매매를 적법한 행위로 착각하게도 했고 집창촌을 공창으로 오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한 단속하기도 했는데 종로 3가 집창촌의 강제 철거는 세간의 화제였다. 대책 없는 철거는 오히려 여러 형태로 변질하여 전국으로 확산하였다. 그들의 대부분은 직업 전환이 아니라 자리를 옮기거나 민가로 파고들었다. 사회 곳곳에 성매매의 싹이 자라나는 계기가 되었다.

성매매 여성들은 꼬임에 빠져 강제로 끌려가 성 노예가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병든 부모를 부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성매매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생존형 성매매도 있었다. 그러나 대개는 업주에 속아 빚 속에 허덕이며,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성매매 여성이 불법 감금 착취당하는 일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성매매를 양성화하여 관리하는 게 오히려 성매매 여성의 인권을 보호해주고 성병을 관리할 수 있다고 하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거의 성매매가 집창촌을 형성해 고객을 불러들이는 집단적, 고정적 성매매였다면, 현대식 성매매는 개인적, 출장 성매매 등 이동식 성매매로 진화하였다. 고전적 매춘이 먹고 살기 위한 생존의 성매매였다면, 요사이는 생존을 위한 매춘은 별로 없고, 더 잘 살기 위한 돈벌이 수단으로의 성매매로 바뀌고 있다. 성매매의 유형도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안마시술소, 화상 대화방, 전화방, 티켓다방, 변태 이발소 등 퇴폐업소는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고, 현대의 성매매는 새로운 방법으로 진화 발전하고 있다.

고급 술집 등은 늘 성매매의 온상이다. 요즈음은 풀살롱, 텐프로, 신종 안마 시술소 등 온갖 해괴한 형태의 유사 업종이 단속망을 피해 생겨나기 시작했다. 풀살롱은 한 건물에 유흥주점과 성매매를 위한 모텔이 함께 있는 곳을 말한다. 텐프로는 대한민국 상위 10%의 미모를 가진 아가씨들이 있다는 말이며, 또 매니저 수수료가 10%라서 텐프로라고 한다고 한다. 이는 수입 중 매니저가 10%밖에 가져가지 않으니 성매매 여성의 수입이 그만큼 많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지 싶다. 요즈음은 인터넷의 발전으로 성매매도 인터넷으로 교류하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연예인들의 고액 성매매가 종종 언론에 노출되기도 한다. 성매매 여성들이 승용차로 고객을 모시는 고급 성매매가 흥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성매매는 이렇듯 고급화되어가고 있다. 이에 참여하지 못하는 성 매수 요구자들의 풀지 못한 욕망이 다른 방향으로 분출되지는 않을까 우려되는 상황이다.

성매매 근절은 가능한 화두일까? 성매매는 나라가 잘 사느냐 못 사느냐의 문제도 아니다. 성매매는 선진국에도 후진국에도, 자본주의 국가에도 사회주의 국가에도 존재한다. 유럽에서는 성매매를 법으로 허용하는 나라도 등장했다. 성매매는 그냥 사람 사는 곳엔 어디에든 일상처럼 존재하는 그런 것이다.

정부는 성매매방지 특별법을 시행하여 성을 사는 사람도 처벌하게 하였다. 그 후 전국 각지의 집창촌은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지금껏 성매매는 근절되지 않고 점점 더 음성화되면서 확산하고 있다. 최근에 성매매 근절을 다짐하며 미아리 텍사스촌에 근무했던 어느 경찰관은 끝내 성매매 단속은 풍선효과일 뿐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것은 어쩌면 성매매는 근절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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