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집 *생선비늘*/4부 객기

엉덩이 매혹

취송(翠松) 2022. 3. 21. 09:38

엉덩이 매혹

그녀는 꽉 낀 청바지를 입었다. 길가에 세워놓은 몸매가 예쁜 아가씨의 광고 사진이 눈길을 끈다. 예쁜 얼굴이 아니라 매혹적인 엉덩이의 모양을 강조한 모습이다. 요즈음 여인의 매력은 엉덩이에 있다는 듯 엉덩이의 아름다움을 맘껏 뽐낸다.

몇 년 전에 인기 걸 그룹 소녀들이 살랑살랑 엉덩이를 흔드는 춤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적이 있다. 어디 소녀들뿐이겠는가, 요즈음은 주부 가수들도 노래를 부르며 엉덩이춤을 추는 장면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아니 그 옛날 뺑덕어멈도 광목 치맛자락 허리에 바짝 휘감으며 커다란 엉덩이를 좌우로 씰룩거리며 남정네를 유혹하지 않았던가.

남자들은 여자 엉덩이의 매혹에 열광한다. 어떤 이들은 엉덩이의 생긴 모양으로 그 형태를 분류하기도 한다. 그중에 여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엉덩이는 동그랗게 생긴 사과 모양 엉덩이라고 한다. 그래서 여성들은 사과 형 엉덩이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운동도 한다. 그런데 엉덩이의 매혹이 비단 젊은 여성의 사과 모양에만 있을까.

나는 늘 그렇듯 점심을 먹은 후 동네 산으로 운동하러 가고는 했다. 그날은 삼복의 열기로 온 천지가 가마솥이 끓듯 부글부글 끓었다.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산을 한 바퀴 돌고 내려오고 있었다. 날씨가 어찌나 더운지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나는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로 땀이 범벅이 되어 눈앞에 보이는 길만 내려다보며 걷고 있었다. 그런데 길을 조금 벗어난 멀지 않은 곳에서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니 조금은 야한 장면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었다. 어느 아주머니가 숲이 우거졌으니 깊이 들어가지 못한 모양이었다. 설마 누가 오랴 싶어 길옆에서 볼일을 보다가 인기척이 나니 마음이 급해진 것이다. 얼른 옷을 입으려는데 땀에 돌돌 말린 팬티가 엉덩이 밑에 걸려 올라가지를 않고 있었다. 차라리 앉은 채로 내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으면, 그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고 정신없이 내려오던 길을 걸었을 건데 말이다. 그녀가 소리를 내는 바람에 무의식적으로 고개가 돌아갔던 것이다.

나는 그때 여인의 엉덩이를 처음 보는 듯 황홀했다. 뽀얗고 달덩이처럼 둥그스름한 모양이 마치 흥부네 지붕 위의 둥근 박을 연상케 했다. 돌돌 말린 팬티는 마치 박을 받쳐놓은 똬리처럼 어울렸다. 뽀얗게 영근 박에는 금은보화가 잔뜩 들어 있는 듯 우람해 보였다. 그것은 하얀 낮달이 잠시 땅에 내려온 듯 환하게 빛났다. 뽀얀 색깔이 얼마나 곱던지! 달려가서 팬티를 걷어 올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얼굴에 땀이 줄줄 흘러 앞이 안 보일 정도였기에 미안한 마음으로 못 본 척 그냥 가던 길을 재촉했다. 흥부네 지붕 위의 둥근 박의 여운을 마음속으로 간직한 채.

또 한 번은 친구들과 여름 바닷가에서 텐트를 치고 하루를 숙박하던 때였다. 친구 셋이서 여름이면 연례행사처럼 바닷가에 가서 텐트를 치고 하루를 자고 왔다. 어떤 이들은 늙어가며 무슨 주책없는 짓이냐고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늘 다녔다. 이름 있는 해수욕장은 복잡하기에 피하고 차를 몰고 가다가 조그만 모래톱이 보이면 그곳에 텐트를 쳤다. 그래서 해마다 가는 곳도 다르다. 그날도 조그만 모래톱에 텐트를 치고 아이들 모양 물장난을 하기도 하고 자맥질을 하여 성게도 잡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려 조개를 잡기도 했다.

수평선에 노을을 뿌리던 태양도 바닷속으로 빠져드니 서서히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낮에 잡은 성게에서 알을 꺼내고, 몇 개 안 되는 조개를 구워 소주잔을 나누고 있었다. 쫄깃한 조개를 안주하여 밤바다에서 마시는 소주는 감칠맛 나게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우리 텐트와 조금 떨어진 곳에 한 동의 텐트가 더 있었다. 그래서 그 모래톱에는 달랑 두 동의 텐트만 있었다. 옆의 텐트에서는 중년의 남녀가 노년의 우리와는 다른 분위기로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소주를 다 마셨던지 옆집 남녀는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소주에 취해 일찍 잠자리에 드나보다 생각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텐트 속에서 여자가 나오더니 열을 주체 못 하겠다는 듯 바다로 들어가 주저앉는다. 밤이라 깊이 못 들어가고 물거품 하얗게 반짝이는 물가에 앉았다. 물에 살짝 뜬 잠옷 같은 하얀 시스루 원피스가 하얀 포말과 어울려 아름다운 야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만월에 조금 모자라는 달빛이 희뿌옇게 물가를 비추고 있었다. 소주 한 잔 얼큰하게 된 나의 눈엔 그녀가 마치 달빛 좋은 날 목욕하러 내려 온 선녀처럼 보였다. 몰래 훔쳐볼 거리가 생긴 우리는 조용히 침을 삼켰다. 그녀는 우리가 보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행동에 제약이 없었다. 그녀는 열이 많이 나는지 앉은 채로 치마를 훌러덩 들어 올렸다. 달빛 어우러진 그녀의 둥근 엉덩이가 뽀얗게 눈부셨다. 바닷물이 찰랑거리며 내는 하얀 포말은 선녀의 강령을 축하해주는 퍼레이드였다. 뽀얀 햇박 같은 엉덩이가 얼마나 아름답던지! 그것은 전에 산에서 보았던 여인의 엉덩이와 닮았다.

청바지 속의 사과 모양의 엉덩이는 아름답다. 하지만 어찌 중년 여인의 달덩이 같은 후덕한 엉덩이에 비교할까. 비록 허리와 엉덩이를 구분하는 굴곡졌던 선이 밋밋한 산등성이처럼 메워졌다 한들 어찌 숨어있는 아름다움조차 사라졌다 하겠나. 그것은 아이들을 생산하고 키우느라 얻은 훈장보다 값진 영광이 아니랴. 젊은 아가씨의 엉덩이가 어찌 흥부네 초가지붕 위의 둥근 박 같은, 아니 보름 달덩이 같은 중년 여인의 엉덩이에 비길까.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여인들의 가요 경연 대회 프로그램이다. 가수들의 열창에 고막 호강의 호사를 누린다. 저마다의 퍼포먼스가 눈길을 끈다. 중년의 여인들이 살랑살랑 엉덩이 흔들어 춤을 춘다. 엉덩이춤의 매혹에 내 가슴이 벌렁거린다. 아마도 인류의 조상 호모 사피엔스도 엉덩이의 교태로 사내를 유혹하지 않았을까. 슬쩍 옆에 있는 아내의 엉덩이를 곁눈질한다. 노안으로 시력 떨어져 침침한 눈이 선명하지 않다.

 

 

'수필집 *생선비늘* > 4부 객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화되지 않은 사진  (0) 2022.03.24
속미인도(俗美人圖)  (0) 2022.03.23
성매매  (0) 2022.03.19
밑동에 핀 꽃  (0) 2022.03.19
객기(客氣)  (0) 2022.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