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화되지 않은 사진
추억이 인화되지 않은 사진으로 가슴에 남아있다. 흐르는 세월에 얼굴은 흐릿해졌지만, 그때의 광경은 기억에 새겨진 명화의 한 장면처럼 더 선명하다.
어느 해 10월 초 연휴였다. 나는 단풍 짙은 가을을 맞아 친구 부부와 함께 산악회에서 모집하는 단체에 가입하여 설악산 등산하러 갔다. 오색 약수터에서 잠을 자고 새벽 다섯 시에 출발했다. 대청봉을 넘어 설악동으로 내려가는 코스였다. 설악제가 열리는 기간이었기에 사람이 얼마나 많던지 앞 사람의 뒤통수만 보고 걸어야 할 지경이었다. 마치 전쟁 통의 피난민 대열 같았다. 팀에서 한번 이탈하면 서로 만날 수 없을 만큼 혼잡했다. 나는 친구와도 떨어졌고 오로지 아내만 챙겨야 했다.
얼마간의 간식은 이미 떨어졌고 희운각에 도착해서야 컵라면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컵라면이 얼마나 맛있었던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후에 해가 떨어지고 한참이 지난 뒤에야 비선대 매점에 도착했다. 갈증과 허기를 달래려고 급한 대로 막걸리 한 병을 주문했다. 그런데 어떤 낯모르는 아가씨가 아는 척을 한다. 옷깃에는 얼굴만 한 이름표를 달고 있으니 사람은 몰라도 일행임은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는 직장 친구들 몇 명이 같이 왔는데 오다가 뿔뿔이 흩어졌단다. 그녀는 조그만 손가방조차 들고 있지 않았다. 모든 것을 일행에게 맡겨버려 음료수 한 잔 사서 먹을 돈도 없다며 먹을 것을 좀 달라고 했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낯선 사람한테 먹을 것을 찾을까. 우선 막걸리부터 한잔 따랐다. 산에 가서 땀을 흠뻑 흘리고 마시는 막걸리 맛을 어찌 말로 표현하리. 게다가 배까지 고플 때 요기라니. 그녀도 한 잔을 쭉 들이켜고는 속이 그득한 듯 만족한 표정이었다. 한 잔을 더 권하니 사양했다. 처음 보는 젊은 여자한테 무리하게 권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 싶어 더는 권하지 않았다.
다음 날이었다. 아침 식사를 마쳤는데 웬 여자가 와서는 대뜸 책임지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나는 무슨 뜻인지 몰라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바로 그녀는 웃으며 어제 우리 아가씨한테 어떤 막걸리를 먹였냐고 말하며 한밤중에 막걸리 먹으러 가자고 보채는 바람에 잠을 못 잤다는 것이다. 그녀는 함께 온 그 여자들의 대표였다. 그때야 전날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막걸리를 한 잔 더 권하지 못했던 게 못내 아쉬웠다. 한 번 더 권하기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을까. 지금 아가씨 얼굴은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그날의 기억은 풍경화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또 한 장의 사진도 겨울의 설악산이다. 1월 초의 신정 연휴였다. 친구와 둘이서 설악산 겨울 안내 등산에 따라나섰다. 오색 약수터에서 일박하고 새벽에 등산을 시작했다. 새벽이라고는 하지만 한밤중이었다. 그래도 온천지가 하얀 눈밭이니 사위는 여명처럼 훤했다. 출발하기 전에 안내자는 선두에 서고 다른 누구에게 후미를 부탁했다. 그러나 막상 등산이 시작되니 대열은 바로 흩어져 끼리끼리 이합집산하였다. 우리 팀만이 아니라 여러 군데에서 왔기에 전체가 뒤죽박죽 섞여버렸다. 나와 친구는 뒤로 처져서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우리 뒤에는 다른 팀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산을 오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가씨 둘이 처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게 아닌가. 그녀들은 우리와 같은 이름표를 옷깃에 달고 있었다. 얼굴은 모르지만, 우리와 같은 차를 타고 온 사람들은 분명했다. 그런데 난감했다. 그들이 등산 복장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래는 등산이 아니라 관광으로 따라왔다는 것이다. 그 차에는 등산팀과 관광을 위한 두 팀이 한 차로 온 것이었다. 등산팀에서 누가 유혹을 했던지, 준비도 없이 무작정 따라붙었다. 무모한 결정이었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아이젠도 스패츠도 없이 나섰으니 말이다. 게다가 등산화가 아닌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위험하다고 말하며 포기를 권했다. 그런데 내려가서 대책이 없단다. 우리를 오색에 내려준 차는 그날 바로 설악동으로 떠나버렸단다. 난감했지만 데려갈 수밖에 없었다. 웬만한 등산이면 아가씨들이 제 발로 왔으니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왔다고 호들갑을 떨겠지만 제 몸조차 가누기 힘든 설악산의 겨울 등산에서 이것은 보통 큰 혹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쩌랴, 힘을 내보기로 했다.
비탈면의 눈길이라 아이젠이 없으면 한 발자국 내딛기도 힘들었다. 아이젠을 하나씩 나누어 끼고 뒤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끌어주면서 한발 두발 옮기며 올라갔다. 다른 사람들보다 한참이나 늦게 올라갔는데도 대청봉에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걱정이 되기는 했나 보다. 그들은 사람을 살려줘 고맙다고 우리에게 큰절하듯이 인사를 했다. 그녀들에게 등산팀에 합류하도록 유인한 사람들이었다. 그녀들을 방치한 채 올라가 놓고는 그래도 일말의 양심이 있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를 확인하고는 안심이 되었든지 수고하라는 인사말만 남기고는 또 휑하니 출발해버렸다.
산에서 내려가는 길은 훨씬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더 조심하며 내려가야 했다. 철 계단은 얼음으로 윤이 반들반들했다, 아이젠이 없으면 발 딛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너럭바위 같은 넓은 바위는 지나가는 건장한 남자가 품에 안고 건너 주기도 했다. 어려운 길을 함께 해서일까, 우리는 젊은 연인들처럼 가까워졌다. 즐거운 시간도 많았다. 생글생글 웃으며 고마워하는 모습에 모든 힘들었던 순간들도 눈 녹듯 사라졌다. 그렇게 숙소에 도착한 건 자정이 넘어서였다. 그 시간에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청봉에서 만났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데려오느라 수고했다면서 이제 여자들은 자기네들한테 넘기라고 했다. 무슨 막장 드라마 같은 연출에 웃음이 났다.
지금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 그러나 그 만남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내 가슴에 남아있다. 이제 귀밑머리 하얘졌을 그녀들도 그때 일을 기억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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