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팔환초길
왕건 8길 중 일곱 번째 길은 가팔환초길이다. 매여동 버스 종점에서 초례산 정상까지 약 3.3 ㎞의 오름 길이다.
산속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매여 마을이다. 이곳은 주변 산이 모래가 섞여 매화처럼 흰색을 띠고 있고, 산이 오목하고 매화 모양이라 그 이름을 매여 마을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경북대학교 학술림을 지나 조금 더 걸으니 오른쪽으로 초례산 입구가 보인다. 입구를 들어서 조금 걸으니 사방댐이 있다. 산사태를 방지하기 위하여 만든 조그만 댐이다. 댐을 지나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인데 오르기가 만만치 않다. 정상이 가까워지는 모양이다. 오르면 오를수록 다리에 힘이 빠진다. 여기저기 미끄러운 마사토가 많아 지친 다리를 더 힘들게 한다. 마사토도 천년 세월 풍화에 제 몸 부수어 만들어낸 돌 조각이 아니겠나.
능선에 올라서니 시야가 확 트인다. 초례산까지는 아직 좀 더 걸어야 하나 보다. 방향은 잡히는데 봉우리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능선 길을 걸어 한참 올라가니 드디어 초례산이 보인다. 뾰족하게 솟아오른 봉우리가 손짓하듯 우리를 부르는데 지친 다리는 더디기만 하다. 조금만 더 힘을 내자고 서로 격려하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드디어 암벽 봉우리가 우뚝한 정상 바로 밑에 선다. 힘차게 움직이던 다리가 후들거린다. 숨을 한번 고르고 봉우리에 올라선다. 정상에는 두 개의 바위가 마주 보고 있다. 초례산의 바위가 환성산에서 온 손님이라도 맞은 듯 다정한 모습이다. 그 사이에는 정상을 알리는 해발 635.7m라고 음각된 표지석이 있다.
가팔환초는 가산, 팔공산, 환성산과 초례산의 앞글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팔공산맥이라 할 수 있는 팔공산은 중앙에 팔공산이 있고 서쪽 끝으로는 가산, 동쪽 끝으로는 갓바위가 있다. 그리고 다시 갓바위에서 남쪽으로 환성산과 초례산으로 이어지며 포근하게 대구를 감싼 모양이 된다. 초례산이 비록 높지 않은 산이지만 이곳에 올라서면 가팔환초를 두루 살펴볼 수 있기에 이 길을 가팔환초 길이라 이름 붙여진 것이지 싶다.
시선을 돌려 저 멀리 가산을 바라본다. 가산은 팔공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약 10km 떨어진 곳에 있다. 가산은 정상에 나지막한 일곱 개의 봉우리로 둘러싸인 평지가 있고 여기서 사방으로 일곱 개의 골짜기가 뻗어 나가고 있다. 일곱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일명 칠봉산으로도 불린다. 가산은 단순한 등산코스만이 아니다. 그곳에는 가산산성이라는 유적이 있다. 가산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 조선 중기 인조 때에 전략적 방어를 위하여 산골짜기를 이용하여 쌓은 석성(石城)이다. 정상에는 대구시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운동장만큼 넓은 가산 바위가 있다. 사면이 깎아지른 듯이 우뚝 솟아 있는 바위 위가 평지인 게 신비롭다. 많은 사람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식사하며 담소를 나눈다.
산맥을 따라 동쪽으로 쭉 시선을 돌린다. 저 멀리 비로봉이 우뚝하다. 팔공산 정상인 비로봉은 해발 1,193m의 높은 산이다. 우리나라 대도시 근교의 산으로는 제일 높고 제일 웅장한 산이 아닌가 싶다. 팔공산은 좌우에 가히 좌청룡, 우백호라 할 만한 동봉과 서봉을 거느린다. 그리고 서쪽으로는 가산 동쪽으로는 갓바위로 뻗어 있다. 학이 날개를 펼쳐 대구를 감싸는 형상이 아니겠는가.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에서 왜선을 섬멸한 학익진 포진이 바로 그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왜와의 첫 해전에서 학의 날개 모양의 포진으로 적을 섬멸하여 왜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학이 날개를 편 모양은 얼마나 아름답고 장엄한가.
팔공산맥은 동쪽의 갓바위로 뻗어 나간다. 갓바위는 팔공산 동쪽 관봉(冠峰)의 정상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암벽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좌불상이다. 원래 불상이 있는 봉우리의 이름이 관봉이 아니었는데, 고려 시대부터 이미 갓(冠)을 쓴 불상으로 유명해져 봉우리의 이름을 관봉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갓바위는 누구에게나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속설을 간직하고 있어 입시 철이 되면 전국에서 사람들이 발 디딜 틈이 없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하다.
팔공산맥은 동서로 길이 15㎞ 가 넘는 자연 성벽으로 대구의 북쪽을 막아주는 담장이며, 다시 갓바위에서 남쪽으로 환성산으로 뻗어 초례산에 이르며 동쪽을 막아주는 담장 역할을 한다.
환성산은 바로 앞으로 잡힐 듯 보인다. 초례산과는 형제인 듯 가깝다. 또 중간에 낙타봉이 있어 더 가깝게 맺어준다. 환성산(環城山)은 동쪽의 무학산과 북쪽의 팔공산을 끌어당기는 고리 역할을 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대개의 산이 그렇듯 환성산도 정상 부위는 우뚝우뚝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그 바위의 생김이 옛날 머리에 쓰던 의관의 하나인 감투처럼 생겼다 하여 봉우리 이름을 감투봉이라고도 한다.
초례산은 높지 않은 대구 근교의 산이기에 사람들이 건강을 다지기 위해 많이 찾는 곳이다. 호흡을 크게 하고 사방을 둘러본다. 사방이 확 트여 가산, 팔공산, 환성산이 훤히 보인다. 가팔환초에 포근히 쌓여있는 대구 시내가 아늑해 보인다. 팔공산과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낮은 초례산을 포함해 가팔환초라 한 것을 이해하겠다.
그렇게 대구는 주위를 둘러싼 가팔환초가 담장처럼 보호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웬만한 바람은 대구를 그냥 스쳐 지나간다. 다시 한번 고개 들어 가팔환초를 조망한다. 가팔환초는 대구 사람들의 모든 삶과 모든 역사를 품고 있다는 듯 의연하다. 팔공산을 크게 외쳐 본다. 모진 비바람에도 흔들림 없이 대구를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의 소리가 울림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