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수필모음/마바사아 24

무심천의 피라미

무심천의 피라미 / 목성균 청주시 한 복판을 가르며 흐르는 냇물을 무심천(無心川)이라고 한다. 마음을 비워 주는 냇물이라는 선입견을 주는 이름이다. 청주를 양반의 고장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걸 명예롭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진취적이지 못한 도시라는 말 같이 들려서다. 양반, 고루한 보수성향의 비생산적인 사람을 가르키는 말로 들리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무심천이란 냇물의 뉘앙스가 그런 소리를 듣게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무심천, 왠지 소리치며 흐르는 냇물이 아니고 흐르는지 안 흐르는지 알 수 없는, 시체(時體) 말로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우유부단한 사람을 이르는 이름 같아서 맘에 안 든다. 아무튼 좋다. 무심천(無心川)이든 유심천(有心川)이든 냇물 이름이 문제가..

멀리 가는 물

멀리 가는 물 / 정성화 강이 흐르는 마을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아버지가 강에서 낚시를 하는 동안 나는 망초꽃이 핀 강둑에 앉아 강물이 흘러가는 것을 내려다보곤 했다. 그러다 심심하면 도시락을 쌌던 종이로 작은 배를 접어 강물에 띄웠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종이배는 신이 난 듯 제 몸을 흔들며 강 아래쪽으로 흘러갔다. 강은 스스로 멀리 가는 물이면서 멀리 데려가 주는 물이었다. 문학 또한 멀리 가는 물이다. 여러 장르의 작품들이 모여 큰 강을 이루며 이 시대의 낮은 곳을 거쳐 흘러간다. 낮은 곳에 웅크리고 있는 눈물이나 한숨, 절망까지 끌어안고 함께 흘러가는 강물, 흘러갈 힘을 잃거나 방향을 잃은 채 돌이나 모래톱에 기대어 있던 물줄기까지 업고 가는 강물이다. 그래서 나는 강이 좋다. 글을 쓰는 ..

웃는 남자//정의양(2022신춘 제주일보 가작)

웃는 남자//정의양 입이 딱 벌어졌다. 사람의 뒷모습을 어쩌면 저리도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을까. 너무나 편안한 모습이다. 조선 후기 천재 화가 김홍도의 염불서승도를 바라본다. 운해 속에 피어난 연꽃 위에 결가부좌 한 선승의 참선하는 뒷모습을 그린 초상화다. 삭발한 머리는 달빛에 파르라니 빛나고, 가녀린 목선을 따라 등판으로 흘러내린 장삼이 구름과 어우러져 바람을 타고 하늘은 난다. 꾸미지 않은 담백한 스님의 뒷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다 문득, 내 얼굴을 생각한다. “얼굴 좀 펴라” 살면서 내가 가장 많이 들어 본 말이다. 남들처럼 눈 코 입 하나 빠진 거 없는 외모이기는 하나 표정이 없어 그게 문제다. 아마도 삼신할미가 생명을 점지하고, 마지막 미소 한 줌 훅 뿌려주는 의식을 깜박하신 듯하다. 까무잡잡하..

막사발의 철학//복진세(2022신춘 매일신문)

막사발의 철학//복진세 한국의 그릇에는 도자기와 막사발이 있다. 가만히 보면 생김새도 다르고 쓰임도 달라서 재미있다. 사람도 도자기 같은 사람이 있고 막사발 같은 사람이 있다. 도자기는 관요에서 이름난 도공에 의하여 질흙으로 빚어서 높은 온도에서 구워낸다. 도자기는 관상용 또는 화병이나 찻잔, 식기 등으로도 널리 사용되었다. 대부분은 만들어질 때부터 용도가 정하여진다. 격식 있는 상을 차릴 때는 밥그릇 국그릇 탕기 찜기 접시며 주병 등과 같이 용도대로 사용해야 한다. 국그릇에 밥을 담을 수는 없다. 그릇 하나에 하나의 용도만이 정하여졌다. 도자기는 활용 면에서 보면 매우 편협한 그릇이다. 사용하지 않을 때는 깨끗이 닦아서 장식장 등에 전시되어 관상용으로 사용된다. 행여 다칠세라 다루기에도 여간 조심스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