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집 *생선비늘*/1부 생선비늘

만년송(萬年松)

취송(翠松) 2022. 3. 3. 09:05

만년송(萬年松)

노란 산수유꽃 햇살에 반짝이는 이른 봄날, 은해사 뒤쪽으로 산길을 오르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 바른길을 찾기 위해 우거진 숲을 헤치느라 삭정이 가지에 얼굴을 긁히며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능선에 올라설 수 있었다.

구불구불 산길을 걷자니 우뚝우뚝 예사롭지 않은 바위 군락이 나타났다. 치솟아 벼랑을 만든 바위가 있는가 하면, 옆으로 비스듬하게 서 있는 바위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깜냥대로 자리하고 있었다. 조심스레 바위를 타고 올라갔다. 군데군데 널려있는 너럭바위가 어느 대가(大家)의 안마당처럼 넓게 펼쳐졌다. 어느 세월 계곡이었던 곳이 위로 솟아올라 산이 되었는지, 바위들은 계곡에서 흐르는 물에 숱한 세월 제 몸을 씻은 듯 정갈했다. 아니면 북풍한설 맞으며 인고의 긴 세월을 탁마라도 했던가, 잘 다듬어진 바위들이 아무래도 신선들이 놀던 곳인 듯 예사롭지 않았다.

너럭바위 위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가부좌 자세인 듯 위엄 있어 보였다. 그 옛날 수행하던 도력 높은 선인의 화신인가, 묵언 수행 중인 선인(仙人)을 만난 듯 마음이 겸허해졌다. 만년송(萬年松)이란 표지판이 택호(宅號)인 듯 장엄해 보였다. 이웃의 나무들은 골바람에 잎을 살랑거리며 한가한 오후를 즐기고 있는데 홀로 앉은 만년송의 묵상은 쉬이 끝날 것 같지가 않다.

소나무 곁으로 바투 다가섰다. 우아한 몸통과 달리 울퉁불퉁한 뿌리가 바위를 끌어안고 안간힘을 다해 버티고 있었다. 다른 뿌리로는 풀조차 뿌리내리기를 포기한 척박한 바위틈을 비집고 들어가 먹이를 구하는 모습이었다. 보기조차 안쓰러웠다. 삶을 이어가기 위한 처절한 모습은 차라리 아우성이요, 절규였다. 너무도 기이해서 하늘을 가리고 있는 솔가지를 올려다보았다. 큰 나무의 가지 끝이 좁디좁은 분에서 자란 분재 같은 모습이었다. 물 한 모금 마음껏 마실 수 없는 바위틈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전략이리라. 그래도 원줄기는 붉은빛으로 소나무의 단아한 자태와 수려한 용모를 간직하고 있었다.

외경심에 조심스레 두 팔 벌려 감싸 안았다. 한 아름 가득 안긴 붉은 줄기에서 뿜어내는 솔향이 은은하다. 말초적 후각을 자극하는 짙은 꽃 향이 아니라 가슴을 전율하는 만년을 이어온 뭉근함이었다. 아내를 품어 안은 듯 포근했다.

비좁은 바위틈에서 용트림하듯 꿈틀거린 뿌리가 아내의 다리에 울퉁불퉁한 하지정맥 같다. 아내도 바위틈에서 자라는 소나무같이 몸 비틀어 뿌리 내려야 했던 적이 있었다. 매달 나오는 봉급이 수입의 전부인 내가 대책도 없이 다니던 회사를 명예퇴직한 후부터였다. 그 후 조그만 일을 시작했지만, 생활비를 충당할 만큼 수입이 되지 못했다. 가뭄에 저수지가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듯 얼마간의 퇴직금도 서서히 말라가기 시작했다. 언제 한번 하늘에서 비가 내리듯 돈을 흠씬 갖다 주어본 적도 없지만, 회사를 그만두고부터는 더 어려운 살림을 해야만 했다. 밤에는 이슬을 마시고, 뜨거운 태양이 내리쬘 때는 불어오는 바람 한 자락에 몸을 식히는 소나무였다. 아이들에게 한참 돈이 들어갈 때였으니 그 답답한 속을 말해 무엇하랴. 친구들의 모임에 다녀온 날엔 더 힘들어했다. 자꾸 비교되는 것 같았다. 서서히 친구들과의 거리도 멀어지기 시작했다. 괴로움을 참느라 애쓰는 모습은 물을 찾기 위해 뿌리를 비트는 소나무였다.

힘들어하던 아내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하지만 집에서 살림하며 아이들 양육만 맡았던 아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먼저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어느 초등학교 급식부에 어렵게 입사는 했지만 조리하고 관계없는, 배식하고 설거지 같은 일을 하는 힘든 노동이었다. 퇴근한 아내는 온몸이 쑤신다고 했다. 아내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했고, 피곤함에 곯아떨어진 것 같은 모습이 애처로웠다. 무의식 속에서 흘러나오는 앓는 소리가 내 가슴을 메이게 했다. 부부가 저녁에 오순도순 이야기하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래도 아내는 생존을 위해 한 뿌리로는 바위를 움켜쥐어야 하고, 또 다른 뿌리로는 한 방울의 물을 찾아 틈바구니 깊숙이 제 몸을 비틀어 넣어야 하는 소나무의 질긴 생명력같이, 그렇게 애를 쓰며 가정을 지켜냈다. 남편에 대한 불만조차 가슴으로 삭이며 어려움을 극복해내는 아내가 고마웠다.

만년송이 내 귓가에 속삭였다. ‘삶의 길이 서로 다를 뿐이지 누구나 잘못 들어선 길은 없다. 평탄한 등산길은 오히려 지루하지 않더냐, 내가 자리를 조금 옮겨 저 옆의 소나무들과 함께했다면 지금 누가 나를 만년송이라 했겠는가. 바위틈에서의 거친 삶이 오히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이다. 누구나 힘든 시기는 있다. 그것을 견디어내느냐, 굴복하느냐는 오롯이 본인 몫이다. 슬기롭게 헤쳐나가면 반드시 즐거운 날이 올지니, 지금 가고 있는 길이 힘들다고 번민하거나 가슴 아파하지 말라고 말이다.

만년송의 설파는 진정 나에게 불립문자였나, 속세의 번뇌와 고뇌가 사라진 듯 머리가 맑아졌다. 저녁 해가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릴 때, 만년송이 방향을 가리켰다. 내려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수필집 *생선비늘* > 1부 생선비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효부모 사후회(不孝父母 死後悔)  (0) 2022.03.04
책가방의 추억  (0) 2022.03.04
플라타너스  (0) 2022.03.04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0) 2022.03.03
생선 비늘  (0) 2022.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