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뒤뜰의 감나무
베란다 창을 연다. 청량한 가을 공기가 얼굴에 상큼하다. 아파트 단지에도 이미 가을이 깊숙이 들어와 있음이다. 여름의 싱그러움 못지않게 은은히 익어가는 모습이 또 다르게 다가선다. 한껏 숨을 들이쉬며 고개를 돌리는데 건너편 감나무가 나의 시선을 잡는다. 마당 건너 앞 동 건물의 뒤뜰에는 이런저런 나무들과 함께 감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회색 아파트 벽에 그려진 한 그루의 정물화처럼 말이다.
감나무가 본래 있어야 할 곳은 농촌의 너른 들판이 아닌가. 추수 끝난 벌판에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나무의 정경은 자연이 만들어 낸 한 폭의 풍경화다. 잎 다 떨어뜨리고 빨간 알감만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나무의 자태는 보는 것만으로도 짜릿하다. 감나무만큼 제 열매에 자신감을 갖는 나무가 또 있을까. 무더운 여름 지나고 바람에 냉기가 실릴 즈음이면 감나무는 벌써 잎을 떨어뜨리기 시작한다. 어느새 나무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인의 나신 같은 몸이 되어 붉게 익어가는 알감만을 햇빛에 반짝인다.
또 감나무는 시골집 마당의 사립문 곁에 우뚝 서서 택호 노릇을 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런 집을 감나무 집이라 불렀다. 내 어린 시절에 감나무는 아이들과 아주 친근한 나무였다. 동네에 큰 감나무가 한 그루 있는 집이 있었다. 감나무 밑에는 봄에 꽃이 피면서부터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감꽃은 배꽃이나 복숭아꽃처럼 예쁜 꽃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배나무나 복숭아나무가 아닌 감나무 아래로 모여들었다. 떨어진 감꽃을 주워 먹기 위해서였다. 또 꽃을 긴 풀대에 끼워 넣고 목에 걸고 다니며 하나씩 뽑아먹기도 했다.
꽃이 다 떨어지면 열매가 영글어 간다. 그렇다고 나무에 매달린 열매가 다 영그는 것은 아니다. 일찍 생을 마감하듯 익기도 전에 떨어지는 열매도 많다. 그렇게 도중에 떨어지는 감을 도사리 감이라 한다. 도사리 감도 소금물에 우려 떫은맛을 빼면 아주 맛있는 간식거리가 되었다. 아이들에게 감꽃과 도사리 감은 귀한 주전부리이기도 했거니와 하나의 놀이기도 했다.
지금도 감나무는 어린 시절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되살아나게 하는 가슴속의 그림이다. 그런데 그동안 아파트의 감나무에 아이들이 모여드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감꽃을 줍는 아이도, 도사리 감을 줍는 아이도 볼 수 없었다. 감은 서리 맞은 홍시가 되어 자연 낙하할 때까지도 주워가는 사람도 따가는 사람도 없었다.
지금 감나무가 있는 곳은 아파트의 그늘진 뒤뜰이다. 누가 선택하여 심은 유실수일까, 아니면 이름 없는 조경수의 한 나무로 심어진 것일까. 어쩌다가 햇볕 한 줌 받아보기 힘든 아파트의 뒤뜰에 심어져 어려운 삶을 이어가고 있을까. 불볕더위에 가물어 땅이 타들어 가도 물 한 모금 주는 사람 없었고, 북풍한설에 나뭇가지 잘려 나가도 눈길 주는 사람 하나 없었다. 나무는 너른 들판에 서서 햇볕과 바람을, 그리고 자연이 주는 물을 실컷 마시며 커가야 할 텐데, 늘 응달에서 외롭게 자리를 지키며 살아간다.
함께 이야기를 나눌 이웃도 없다. 아니 이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웃이라야 열매 여는 나무는 없고 응달에서 자란 엉성한 비루먹은 나무들 몇 그루가 옆에 있을 뿐이다. 이파리만 드문드문 매단 이름 모를 나무들만 멀뚱하게 서 있으니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주위에 또 다른 키 작은 꽃나무들이 옹기종기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꽃나무들은 사람의 귀여움이나 받으려 하지 다른 나무들과는 아예 상대도 하지 않으려 한다. 찾아주는 사람 없어 늘 외로운 사람같이 혼자 서 있는 모습이 애처롭게 보이기조차 한다.
계절 따라 아파트의 감나무 잎이 갈색으로 익어가고 있다. 머지않아 나뭇잎 다 떨어지고 붉게 익은 알감만이 조롱조롱 나름의 자태를 뽐낼 것이다. 감은 이 가을에도 붉게 익어가건만 사람들은 감나무에 아무 관심도 없어 보인다. 그래도 아파트 감나무는 열매 맺는 게 소임이라는 듯이 해를 거르지 않고 붉은 감을 주렁주렁 매달고 사람들에게 봐주기를 소망한다.
저 나무도 가을 들판에서 태양의 기를 흠뻑 받으며 대자연을 호흡하고 싶지 않았겠나. 그래도 응달을 마다하지 않고 해마다 붉은 감을 주렁주렁 매달고 그 자태를 뽐내고 있는 모습이 자랑스럽다. 거친 환경 속에서도 감나무 본래의 기상을 잃지 않겠다는 모습이 가상하다.
열매가 상품 가치가 없다고 억울해할 것도 없다. 따내는 사람이 없으니 감은 늘 나무에 매달려 천수를 다한다. 어디 그뿐이랴, 늦게까지 우듬지에 걸려 까치밥이 되어주니 이는 자연 순환의 이치가 아니겠는가. 천수를 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이야말로 생명의 최고 가치가 아니고 무엇이겠나.
그래도 해마다 열매를 맺는 감나무가 있어 내 어린 시절을 회억하고, 삭막한 아파트에서 잠시나마 풍요로운 가을을 완상할 수 있으니, 이 또한 작은 행복이 아니겠는가. 어찌 감나무를 보는 사람이 나 혼자라고만 할 수 있으랴. 아파트 어딘가에서 나처럼 감나무 보기를 즐기는 사람이 또 있지 아니하랴.
오늘 나뭇가지에 매달린 감은 그 붉음이 더 선연하고 그 빛이 더 찬란하다. 나는 오늘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매달려 붉게 익어가는 열매를 바라보며 감나무의 충만한 자신감을 본다. 그리고 내 마음 어느 구석에 있을지 모를 조그만 자신감 하나 찾아낸 듯 마음이 뿌듯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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