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형제 나무
늘 접할 수 있는 산이 바로 옆에 있다는 건 행복한 선물이다. 산에 있는 돌 하나에도 나무 하나에도 나름의 가치와 뜻이 새겨져 있다. 내가 사는 동네 곁에는 욱수골이 있다. 욱수골은 작은 계곡이지만 주위로는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등산로가 사통팔달 뻗어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가볍게 등산하며 즐기는 곳이다.
욱수골에는 오 형제 나무가 있다. 나는 한가위가 지난 며칠 후에 오 형제 나무를 보러갔다. 나무를 본지가 벌써 꽤 오랜 시간이 지났기에 과연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했다. 날씨가 쾌청하여 가을의 상큼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며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내가 이 나무를 처음 접한 지는 한 십 년쯤 되었지 싶다. 산에 오 형제 나무가 있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듣고 있었지만 별로 관심은 없었다. 그저 가지가 별스럽게 다섯 개 정도 뻗은 나무이겠거니 했다. 나는 외골수가 되어 길은 하나밖에 없다는 듯 늘 다니던 길만 고집했다.
오 형제 나무를 볼 기회는 우연히 왔다. 어느 날 친구들이 욱수골로 바람 쐬러 가자고 했다. 나는 오 형제 나무가 생각나 반색하여 동의했고, 그렇게 처음 오 형제 나무를 접하게 되었다. 나무를 보자마자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 그동안의 아집이 민망하여 얼굴이 붉어졌다. 가까운 곳에 이렇게 특이한 나무가 있는데도 보지 않고 지냈다는 게 참으로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는 무슨 문화재라도 되는 듯 구청에서 관리하고 있었다. 깔끔하게 만들어진 안내판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었다. 수종은 버드나무이고 개화기는 4월이고 결실기는 5월이다. 나무껍질은 수렴제, 해열제, 이뇨제 등으로 쓴다. 번개로 인해 쓰러진 나무에서 다섯 가지의 나무가 자라면서 붙여진 명칭이며 손가락을 닮았다 하여 손가락 나무로도 불린다. 각 나무의 둘레도 적어놓았는데 각각 66, 70, 103, 65, 101㎝였다. 그리고 모 방송국에서 방영한 적이 있다는 기록도 있어 이미 전국으로 알려진 나무였다. 쓰러진 나무는 마치 새끼에게 제 살 나누어주는 거미 같이 죽어가며 자식을 키우는 어미 같았다. 쓰러진 어미나무나 위로 뻗은 줄기가 전부 어른 나무인 양 굵었다. 어미나무의 뽑힌 뿌리로 물을 공급받는지 자양분으로 키우는지 모르겠으나 어미 몸통에서 뻗은 줄기들은 잘 자라고 있었다.
그 후 몇 년 동안 다른 등산로를 다녔기에 오 형제 나무를 보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나무를 한번 확인하고 싶어 다시 한번 보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는 나뭇가지가 네 개밖에 없었다. 끝에 있었던 나뭇가지 하나가 베어져 나갔다. 어미나무에서 영양 공급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던지, 병이 들었던지, 아니면 풍화에 못 견디고 쓰러진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자연으로 돌아간 것임은 분명했다. 잘린 면의 색깔이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베어진 지 오래된 것 같지는 않았다. 베어진 자리로는 어미나무의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텅 빈 속은 오 형제를 살리느라 가슴의 진액을 다 빼내면서 기력을 다한 모습이었다. 온몸으로 자식들을 키워낸 우리 어머니의 가슴이 아마도 그랬었으리라.
나는 동기간들과 멀리 떨어져 살고 있다. 이따금 서로 전화로 안부를 물으며 잘 있노라고 대답하고 듣고는 한다. 추석 전날에 먼저 큰 누님에게 전화했다. 누님의 첫 음성이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 큰 누님의 목소리는 늘 밝고 반가운 듯 경쾌했었다. 그런데 힘이 하나도 없는 전화 목소리가 모깃소리처럼 들렸다. 병원에 입원했다가 며칠 전에 퇴원했는데 기력이 회복되지 않아 고생하고 있다는 소리가 슬프게 들렸다. 큰 누님의 나이를 계산해보니 이제 팔십 중반이다. 지금은 백세 시대이니 힘내시라는 위로의 말만을 전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한참 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우리 집 둘째이자 장남인 형님은 몇 년 전에 이미 고인이 되었다. 형님은 자식 손에 이끌려 고려장 당하듯 요양원에 맡겨졌다.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위독하다는 연락이 왔다. 부랴부랴 올라가 보니 이미 의식은 없고 생존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임종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다. 의사는 심폐소생술을 하여 살려놓았다고 하지만 그냥 며칠간 목숨 줄만 붙여놓은 것이었다. 다행히 작은 누님의 목소리는 밝았다. 다른 동기간들도 건강 유지하며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내가 오 형제 나무를 다시 찾은 이유는 어쩌면 내 마음을 위로받고 싶은 게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스러져가는 희망을 붙들고 사는 우리 동기간들에게 어떤 힘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안고 가지는 않았을까. 이미 없어진 한 나무 말고는 네 나무가 전부 끄떡없이 잘 자라고 있다. 아무래도 어미나무의 자양분은 다 소진되었지 싶은데 어디로 영양 공급을 받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뿌리째 뽑혀 넘어진 나무의 잔뿌리가 흙에 심어졌다 한들 얼마나 영양을 빨아들일까 싶다. 혹시 위로 뻗은 나무들의 뿌리는 어미나무의 바닥을 뚫고 흙으로 뿌리를 내리지는 않았을까. 오랜 세월 잘 살아주는 나무를 대하니 반갑고 기쁘다. 우리 동기간들도 나무처럼 든든하게 버티기를 소망해 본다.
오 형제 나무에는 효(孝)가 있고 가족애(家族愛)가 있다. 죽어서 사는 듯 몸을 비틀며 안간힘을 쓰는 나무는 생명의 존엄성을 일깨워준다. 오 형제 나무는 형이상(形而上)과 형이하(形而下)를 아우르는 철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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