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집 *생선비늘* 47

성매매

성매매 내가 성매매 여성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학위 논문 때였다. 내가 쓰겠다고 제출한 논문 주제를 본 교수님은 자료 준비는 충분히 되었느냐고 물었다. 사실 준비가 많이 부족한 상태였고 쓰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지도교수는 성매매 여성에 대하여 써보지 않겠느냐고 제의했다. 논문 주제가 예사롭지 않아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한번 고민은 해보겠노라고 대답했다. 성매매라는 단어가 께름칙하기도 하고 내가 소화해낼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다. 당황하면서도 한편 호기심도 동했다. 그래서 한번 써보겠노라고 용기를 냈다. 지도교수는 성매매 여성들한테 받은 설문조사 자료를 나에게 넘겨주었다. 나는 현실적으로 성매매를 시대의 필요악으로 보아 성매매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려 했다. 그러나 교수님의 생각은 달랐다. ..

밑동에 핀 꽃

밑동에 핀 꽃 만화방창 꽃의 계절이다. 목련이 지는가 싶더니 지금은 벚꽃이 한창이다. 길가에 만발한 벚꽃이 가던 이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다. 파란 하늘에 하얗게 터지는 꽃송이들이 팝콘을 뿌려놓은 듯 장관이다. 벚꽃에 취해 발걸음조차 휘청거린다. 길가의 노거수 같은 벚나무들도 어김없이 꽃을 피웠다. 어느 벚나무 아래를 지날 때였다. 나무뿌리에 낙화인 듯 꽃송이 몇 개 붙어있다. 멈추어 자세히 보니 그것은 떨어진 꽃이 아니라 나무 밑동에서 핀 꽃이었다. 영양분을 줄기와 가지로 보내지 않고 뿌리에서 바로 꽃을 피운 듯 소담하게 피어있다. 어느 계곡 바위틈에 홀로 피어난 이름 없는 야생화처럼. 나는 엊그제 먼지 수북이 쌓인 책장을 정리하다가 누런 봉투를 하나 발견했다. 슬쩍 열어..

방언유희(方言遊戱)

방언유희(方言遊戱) 방언의 사전적 의미는 표준어와는 다른, 어떤 지역이나 지방에서만 쓰이는 특유한 언어이다. 그렇다고 하여 표준어와 방언이 우열 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즈음은 지역마다 고유의 방언을 찾아 재미있는 이야기로 승화시키는 작업도 한다. 나에게도 방언으로 인한 추억이 있다. 방언 때문에 생긴 어긋난 소통은 군대에서 먼저 경험했다. 그때는 중대 교육이어서 전 중대원이 다 모인 장소였다. 교육을 주관하는 소대장의 심기가 몹시 불편해 보였다. 소대장이 어느 분대장을 특정하여 큰 소리로 불렀다. 소대장의 심기를 간파한 분대장은 ‘야~’하고 잽싸게 대답하며 한달음에 달려왔다. ‘야!’, 소대장한테 야라니, 하며 엉뚱한 트집으로 소대장은 화풀이하듯 분대장을 윽박지르며 발로 걷어차기도 하며 야단법석이었..

진골목

진골목 진골목은 긴 골목이란 뜻이다. 대구 중심가인 반월당 근처 종로에 현존하는 근대 골목이다. 종로는 지금의 번화가인 반월당과 동성로에 그 위상을 내어주기 전까지 대구의 중심지였다. 또한, 멀지 않은 곳에 경상감영이 있어 이 일대가 조선 시대에도 중심지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곳은 또 근대 초기 대구의 부호들인 달성 서씨들의 집성촌이었다. 예전부터 대구 부자들이 살던 동네라 큰 건물들이 들어섰기에 대구의 가장 번화가인 중앙로보다 집값이 훨씬 비쌌다고 한다. 지금도 여기저기 근대화될 때의 건물들이 현대 건물과 어우러져 유적처럼 남아있다.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이곳은 요즈음 기성세대와 젊은이들이 공유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처음 진골목이란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골목이 길기에 이름마저 긴 골목이라 했을..

자유공원

자유공원 자유공원은 인천에 있는 공원이다. 이 공원은 조선조 말에 외국인에 의해 설계되어 세워진 근대공원이다. 인천에 있는 외국인들을 위한 공원으로 조성하였고, 그 이름도 만국공원이었다. 내가 이 공원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그즈음 공원 이름이 자유공원으로 바뀌었다. 나는 시골에 살다가 인천으로 이사를 했는데 내가 다닌 초등학교가 공원 너머에 있었다. 공원은 유원지이기도 하면서 교통의 요지였다. 많은 길이 공원을 통하게 되어 있어 통행하는 사람이 많았고 차도 많았다. 그래서 공원에 놀러 오는 사람보다 그곳을 통과해 다니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인천을 떠날 때까지 끊임없이 자유공원을 넘어 다니며 인연을 이어갔다. 그래서 내 젊은 시절의 기억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그..

용호상박길

용호상박길 왕건 8길 중 첫 번째 길은 용호상박길이다. 신숭겸 유적지에서 열재까지 약 4.3 ㎞다. 고려 태조 왕건의 이름을 붙인 길을 왜 신숭겸 유적지에서 시작할까. 신숭겸 유적지에 들어선다. 아침 햇살 가득한 뜰 안이 고요하다. 홍살문 너머에는 왕건을 위해 목숨 바친 신숭겸의 넋이 배어있는 순절단이 보인다. 당시의 처절했던 상황을 회상해 보니 마음이 어지럽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천년 사직을 이어왔다. 천년은 너무 긴 세월이었나, 신라는 서서히 그 힘을 잃어갔다. 옛 백제 땅에는 견훤이 그 세를 떨치고 북쪽 땅에는 고려의 왕건이 있었다. 북쪽 땅 고려는 처음에는 궁예가 일으킨 태봉이었다. 후에 신숭겸과 김락이 홍유, 배현경, 복지겸과 함께 혁명을 일으켜 폭군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대해 고려를 건..

마스크 시대

마스크 시대 온통 얼굴을 가린 사람들뿐이다. 어른들은 물론 엄마 등에 업힌 어린아이들까지도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게 요즈음 세태다. 아니 전 세계 사람들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닌다. 우리 인류가 이렇듯 한뜻으로 통일되었던 시대가 또 있었으랴. 작년, 그러니까 2020년 새해 벽두에 불길한 소식이 전해졌다. 예방약도 치료할 약도 없는 코로나바이러스는 폐렴을 일으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질병이라 했다. 처음에는 중국 우한지역에서 발생했기에 그 이름을 ‘우한 폐렴’이라 불렀다. 그 후 ‘코로나 19’가 공식 명칭이 되었다. 짧은 시간에 코로나는 세계를 뒤덮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1월 중순에 첫 확진자가 발생했고 세계 보건기구는 3월 중순에 팬데믹을 선포했다. 우리나라의 첫 확진자는..

국선도

국선도 국선도는 아주 오래전부터 경천사상(敬天思想)에서 전래한 우리 민족 고유의 선(仙) 수련이다. 국선도의 주 수련은 호흡 수련이다. 그래서 그 명칭을 단전호흡이라고도 한다. 호흡은 생명 유지를 위하여 잠시도 멈출 수 없는 신체 대사 작용이다. 어떻게 호흡하느냐는 건강 유지에 있어 아주 중요하다. 호흡의 깊이에 따라 가슴호흡, 복식호흡, 단전호흡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얕은 가슴호흡은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 그런데 국선도가 있었다는 고증은 여러 곳에서 발견되지만, 국선도 내용을 알 수 있는 어떤 문서가 발견되지 않는 게 매우 아쉽다. 삼국사기에 있는 최치원의 난랑비서문(鸞郞碑序文)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이 나라에 현묘지도가 있으니 가로되 풍류라, 실로 이 도(道)는 삼 교(공자, 노자, 석가)를..

나의 건강법

나의 건강법 건강관리는 의식주만큼이나 중요하다. 저마다 자기만의 건강관리 법이 따로 있을 것이다. 운동이 건강관리 전부는 아니겠지만 건강관리의 중요한 한 부분임은 분명하다 하겠다. 그렇다고 어느 한 가지를 딱 집어 좋거나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본인이 즐겁게 할 수 있으면 좋은 운동이라 생각한다. 무리하게 하지 말고 몸에 맞게 적당히 하면 되지 싶다. 어떤 운동이든가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건강관리법을 소개하려 한다. 나는 국선도를 수련하고 있다. 한때 지도자 생활까지 했으니 국선도는 나와 맞는 운동이 아니겠는가. 국선도는 단전호흡이다. 기체조라고도 한다. 기체조는 기혈유통순환을 위한 체조다. 국선도는 그 움직임의 양태가 다양하다. 서서, 앉아서, 그리고 누워서 하기..

나이 탓이 아니다.

나이 탓이 아니다. 지하철 경로석이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사람이 주머니를 이리저리 뒤지며 무엇인가 찾느라 분주하다. 한참을 찾던 노인은 머리를 툭툭 치며 ‘이놈의 건망증.’ 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리더니 옆 사람에게 휴대폰을 한 번만 쓸 수 있겠느냐고 고개를 주억거린다. 나도 그랬다. 며칠 전, 모임이 있어 나갔다가 소주를 한잔하고 들어온 다음 날 아침이었다. 나가려고 옷을 입는데 뒤통수를 맞은 듯 머리가 번쩍했다. 잠겨있어야 할 주머니의 지퍼가 열려있고 주머니에 있어야 할 지갑이 보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허둥대며 지갑이 있을 만한 곳을 다 찾아보았지만, 지갑은 보이지 않았다. 심하게 술에 취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어쩐 일인지 기억이 전혀 없었다. 차근차근 지갑을 가지고 나간 시점부터 기억을 되새겨보았다. 그..